좋은 시 느낌하나

그 겨울의 시 /박노해

종이연 2021. 11. 16. 20:06

그 겨울의 시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좋은 시 느낌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강선기  (0) 2021.11.18
겨울 여행 /강보철  (0) 2021.11.17
11월 /나희덕  (0) 2021.11.15
초겨울낙엽 /유일하  (0) 2021.11.14
초겨울 /양봉선  (0) 202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