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겨울 배추밭에서 / 조정권
종이연
2021. 1. 16. 19:36
겨울 배추밭에서
조정권
이 겨울 옆구리 무수히 터져 있어
어둠 속으로 새벽 밭길을 끼고 와봐
콘크리트들이 양생되고 있어
입에는 침묵을
눈에는 죽음을 간직하고서
누군가 밭에 나가 콘트리트를 양생하고 있어
그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어
소금기 절은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동해를 지나
춘천에서 돌아와서도
나는 추운 잠속에서 눈을 떴어.
왜, 내 구두 밑창에서 젖은 눈들은 소리쳤을까
세상은 도처마다 버스가 구르고
사고를 낸 입들은 모두 콘크리트를 양생중이고
나를 굴복시키는 완강힌 힘
브록크 같은 팔뚝들이
나를 불러내고
나를 끌고 가서 내 어깨를 누르고
한밤이 하얗게 새기를 기다리는 이유와
날마다 밭에 나가 기다리는 파산자의 일과도
이 겨울에 다시 한 번 혼자 가서 보았어
입에는 죽음들
눈에는 노래를
간직하고서
나를 굴복시키는 저 완강한 손
이 겨울에는 언 살이 무수히 터졌어
가위에게 상상력이란 게 있을 리 없지
그에게는 거미줄보다 세밀한 계획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