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겨울 비가 / 이성복
종이연
2021. 1. 28. 19:25
겨울 비가
이성복
검은 바위들을 끼고 흐르는 물 위로 먹칠한
나무 그림자 여럿 겹쳐져 차갑고 거기,
나뭇가지 사이로 기웃거리던 해가 진저리치며
붉은 핏덩이로 퍼지기도 한다 거기, 차갑고
맑은 물에 눈어두운 쏘가리나 메기가 살아서
천렵 나온 사내들이 통발을 들이낸다 거기.
눈어두워 비늘이나 지느러로만 느끼는
물고기들, 그들만이 아는 물 속의 지도,
귀를 도려내는 추위에도 훌훌 웃통을 벗고
풍덩 찬물 속에 뛰어들어야 보이는 지도,
통발을 아랑곳않고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 근육에 힘이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