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파내온 나무 그림자 / 강신애

종이연 2021. 2. 9. 22:44

파내온 나무 그림자 

 

강신애


그 나무는 브니엘교회 입구
가지밭 모퉁이에 서 있었다
먼 세상을 내다보는 자세로
산책에서 돌아오는 어느 날 나는
꽃삽으로 나무 그림자를 들어내기 시작했다
토막 난 그림자를 날라
내 방에 장판처럼 드리웠다
어둔 물관으로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쪼그려 앉아 나는
습자지 같은 잎새에 혀를 대보거나 갈색 차를 마셨다
그림자는 조금씩 자라났다
가지밭 모퉁이 나무가 그러하듯
제 나무가 그리울 땐
시선을 옆구리 깊숙이 파묻거나
바람도 없는데 나를 떨어뜨릴 듯
가지를 흔들어대기도 했다
길모퉁이 나무는 없어진 제 그림자를 탓하듯
산책길의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그 나무 밑에 서본다
그러면 가느다란 가지를 활갯짓하며
내 발치로 고속 촬영하듯 빠르게
나무 그림자가 생겨났다
가로등 환한 밤, 우리는 이렇게 만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