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초겨울 저녁/강현옥

종이연 2021. 10. 21. 20:28

초겨울 저녁

 

 

강현옥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고

유리창엔 하얀 성애가

탈출하지 못한 추억을

슬금슬금 그리고 있다

지난 세월

흐른 내 눈물방울 세는 동안

구름은 떠돌다

늙은 감나무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고

별빛은 어둠 속에 몸 담그고

눈 깜박깜박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침 햇살 속

국화는 무덤 가에서

한 올 한 올 세상을 지운다

낮은 동산에 아늑히 감싸 안긴

시골마을 모퉁이를 돌아서

멀지 않는 기억 속을 걷는다

내 어린 날의 배나무 사이로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추억의 돌담에 걸터앉으면

버들피리 소리 들리고

마른 풀잎들은 아침 서리를 털며

부질없는 바람에 흐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