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다시,봄날은 간다 / 유종인
종이연
2022. 4. 9. 20:46
다시,봄날은 간다
유종인
해장국집 찾으러 가는 사내의
늦은 토요일 아침,
차가운 봄비를 만난다
거리의 담벼락과 전봇대마다
심령대부흥회의 포스터가 불온전단처럼 나붙고
문득 罪지은 일들
한꺼번에 꽃무더기로 피어나는
오늘은 近東의 벚꽃축제 마지막 날,
난 말 없이 비 맞아 가는
유순한 짐승 한 마리!
내 이름을 다시 지어다오, 이제금
내 사랑의 거푸집을 다시 짜고 싶은 해장국집
창가 식당에 앉아 이마에 돋는 땀을
이 빠진 투가리에 떨구며
前生의 짐승, 내 뼈마디 같은
돼지뼈를 핥아먹으며 꽃을 잊었다
아조아조 숨막히게 술땀을 쏟으며
이 봄이
빗속에 한 채 꽃상여로 떠나는 창밖을 본다
꽃을 팔아 한 몸의 生이
시작하는 어린 창녀의 손을 잡고
변두리 샛강둑 버드나무 밑에서
누이야, 세상엔 바람이 분다
말해주고 싶었다
누이야, 꿈 없이도 다시 봄날은 간다
시집 ; 아껴 먹는 슬픔 (문학과지성사.20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