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고독의 강 /박두진

종이연 2021. 3. 26. 20:09

고독의 강

 

 

박두진

 

 

 

빛에서 피가 흐르는

강(江)

고독(孤獨)이 띄우는

찬란한 꽃불은

밤이다.

 

짐승과 짐승들이 일으키는

내일의 종말(終末)을 위한

끊임없는

교역(交易),

도마 위

푸른 칼 앞에

움직일 수도 없이 눕는

평화(平和)와 자유(自由)여.

 

오랜 앞날에

오늘의 밤을 증언(證言)할

고양이의

불붙은 눈과

목으로 토(吐)하는

가마귀의

피 기록(記錄).

 

바람이 술이 되고

햇볕이

눈물이 되고

저승과 이승을 위한

늙으신 주례(主禮)는

지금 침묵(沈黙).

 

무덤과 혼례(婚禮)를 장식할

최후(最後)의 꽃다발은

이미 짓밟힌

절망(絶望)의 진눈깨비.

 

잘 길들은

식민지(植民地)의 지성(知性)이 선량(善良)해서

밤이 편쿠나.

 

펄럭이던

깃발의 신호(信號)가 내려지자

구름과

바람마저 반란(叛亂)하는

벌판,

 

비둘기가

그 짝의 이름을 외우다

쓰러져 간

고독(孤獨)한 강(江)가에,

 

늙은 눈먼 청동(靑銅)말 하나

먼 노을을 향해

떨면서 울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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