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85

다시 성탄절에 / 홍윤숙

다시 성탄절에  홍윤숙 내가 어렸을 때12월, 성탄절은 눈이 내리고눈길 걸어 산타할아버지 오시는 밤머리맡에 양말 걸어놓고나비잠 들면별은 창마다 보석을 깔고할아버지 굴뚝 타고 몰래 오셨지 지금은 산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그 아들 2세 산타 아들이백화점 대문마다승용차 타고 오시지만금테 안경 번쩍이며에스컬레이터로 오시지만꽃무늬 포장지에 사랑의 등급 매겨이름 높은 순서대로 배급도 하시지만 이런 밤홀로 2천 년 전 그날대로 오시는예수어느 큰길 차도에 발묶여 계신가너 어찌 나를 저버리는가이 세상 끝에서도 잊지 못하는내 사랑 이리 아프게 하는가몰래 몰래 숨어서울고 계신가

12월의 기도 /목필균

12월의 기도  목필균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마음도 많이 낡아져가며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여기다 풀어놓습니다.재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숨이 찹니다.겨울 바람 앞에도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묵묵히 지켜보아 주는 굵은 나무들에게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 같이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12월의 공허 / 오경택

12월의 공허  오경택남은 달력 한 장짐짓 무엇으로 살아왔냐고되물어 보지만돌아보는 시간엔숙맥 같은 그림자 하나만덩그러니 서 있고비워야 채워진다는 진실을알고도 못함인지모르고 못함인지끝끝내 비워내지 못한 아둔함으로채우려는 욕심만 열 보따리 움켜쥡니다내 안에 웅크린 욕망의 응어리는계란 노른자위처럼 선명하고뭉개도 뭉그러지지 않을묵은 상념의 찌꺼기 아롱지는12월의 공허작년 같은 올 한 해가죽음보다 진한 공허로벗겨진 이마 위를 지나갑니다.

12월 / 임영조

12월   임영조 올 데까지 왔구나막다른 골목피곤한 사나이가 홀로 서 있다훤칠한 키에 창백한 얼굴이따금 무엇엔가 쫓기듯시계를 자주 보는 사나이외투깃을 세우며 서성거린다꽁꽁 얼어붙은 천지엔하얀 자막처럼 눈이 내리고허둥지둥 막을 내린 드라마올해도 나는 단역이었지뼈빠지게 일하고 세금 잘 내는뒤돌아보지 말자더러는 잊고더러는 여기까지 함께 온사랑이며 증오는이쯤에서 매듭을 짓자새로운 출발을 위해입김을 불며 얼룩을 닦듯온갖 애증을 지우고 가자이 춥고 긴 여백 위에이만 총총 마침표 찍고.

12월 중턱에서 /오정방

12월 중턱에서  오정방몸보다 마음이 더 급한 12월, 마지막 달달려온 지난 길을 조용히 뒤돌아보며한 해를 정리해보는 결산의 달무엇을 얻었고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누구를 사랑했고누구를 미워하지는 않았는지이해할 자를 이해했고오해를 풀지 못한 것은 없는지힘써 벌어들인 것은 얼마이고그 가운데서 얼마나 적선을 했는지지은 죄는 모두 기억났고기억난 죄는 다 회개하였는지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최선을 다한 일에 만족하고 있는지무의식중 상처를 준 이웃은 없고헐벗은 자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잊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있고꼭 기억해야할 일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이런 저런 일들을 머리 속에 그리는데12월의 꽃 포인세티아낯을 붉히며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12월 / 반기룡

12월   반기룡 한 해를 조용히 접을 준비를 하며달력 한 장이 물끄러미 내려다본다며칠 후면 세상 밖으로사라질 운명이기에 더욱 게슴츠레하고홀아비처럼 쓸쓸히 보인다다사다난이란 단어를 꼬깃꼬깃가슴속에 접어놓고아수라장 같은별종들의 모습을 목격도 하고작고 굵은 사건 사고의 연속을앵글에 잡아두기도 하며허기처럼 길고 소가죽처럼 질긴시간을 잘 견디어 왔다애환이 많은 시간일수록보내기가 서운한 것일까아니면 익숙했던 환경을쉬이 버리기가 아쉬운 것일까파르르 떨고 있는 우수에 찬 달력 한 장거미처럼 벽에 바짝 달라붙은 채병술년에서 정해년으로바통 넘겨 줄 준비하는 12월 초하루

12월은 / 하영순

12월은  하영순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한 장 남은 달력 속에 만감이 교차한다.정월 초하룻날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설계했을까지나고 보면 해 놓은 일은아무것도 없고 누에 뽕잎 갉아먹듯시간만 축내고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죄인이다 시간을 허비한 죄인얼마나 귀중한 시간이냐보석에 비하랴금 쪽에 비하랴손에든 귀물을 놓쳐 버린 듯허전한 마음되돌이로 돌아올 수 없는강물처럼흘러버린 시간들이 가시 되어 늑골 밑을 찌른다.천년 바위처럼 세월에 이끼 옷이나 입히자생각하면 생각할수록문틈으로 찾아드는 바람이 차다서럽다!서럽다 못해 쓰리다어제란 명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