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482

5월 편지/ 도종환

5월 편지  도종환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처럼 긴데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깊은 침묵이 앉습니다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이 핍니까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

5월/ 조병화

5월  조병화 스물을 갓 넘은 여인의 냄새를온몸에 풍기며온갖 꽃송이들이 물 돋은 대지에나무 가지 가지에 피어난다.흰구름은 뭉게뭉게 라일락의숫푸른 향기를 타고가도가도 고개가 보이지 않는푸른 먼 하늘을 길게 넘어간다.아, 오월은 여권도 없이 그저어머님의 어두운 바다를 건너뭣도 모르고내가 이 이승으로 상륙을 한 달해마다 대지는 꽃들로 진창이지만까닭 모르는 이 허전함나는 그 나른한 그리움에 취한다.오, 오월이여

4월의 풀 /천양희

4월의 풀  천양희 빈 들판 위를 찌르는 바람같이우리도 한동안 그렇게 떠돌았다불의의 연기 한가닥 피워 올리며완강하게 문닫는세상의 어느 곳인가안과밖의 고리는 끊어지고저 얼었다 녹는 강물바다에 몸 섞어 떠밀릴 때마다낮은 언덕 굽은 등성이에한줄 마른 뼈로 엎드려구름 낀 세상 낭패하며 바라본다오늘도 허기진 하루4월의 모랫바람 사정없이 불어와취객의 퇴근길앞은 잘 보이지 않고밟혀도 밟혀도 되살아 나는키 작은 풀이 되어뿌어연 가로등 밑을 묵묵히 걸어간다

4월의 일기 /나호열

4월의 일기  나호열 말문을 그만 닫으라고하느님께서 병을 주셨다 몇차례 황사가 지나가고꽃들은 다투어 피었다 졌다며칠을 눈으로 듣고귀로 말하는 동안나무 속에도 한 영혼이 살고 있음을어렴풋이 알게 되었다허공에 가지를 뻗고파란 잎을 내미는 일꽃을 피우고심지어 제 머리 위에 둥지 하나새로 허락하는 일까지혼자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파란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주먹만큼 빛나는 새 한 마리가잠시 머물고 간 뒤4월의 나무들은 일제히 강물 흘러가는소리를 뿜어내고 있다 말문을 닫으라고하느님이 내린 병을 앓고 있는 동안

4월의 꽃 /신달자

4월의 꽃  신달자 홀로 피는 꽃은 그저 꽃이지만와르르 몰려숨 넘어가듯엉겨 피어 쌓는 저 사건 뭉치들개나리 진달래 산수유벚꽃 철쭉들저 집합의 무리는그저 꽃이 아니다우루루 몰려 몰려뜻 맞추어 무슨 결의라도 하듯이그래 좋다 한마음으로 왁자히필 때까지 피어보는서럽고 억울한 4월의 혼령들잠시 이승에 불러 모아한번은 화끈하게환생의 잔치를 베풀게 하는신이 벌이는 4월의 이벤트

4월에서 5월로 / 하종오

4월에서 5월로   하종오  봄의 번성을 위해 싹틔운 너는나에게 개화하는 일을 물려주었다아는 사람은 안다이 세상 떠도는 마음들이한마리 나비되어 앉을 곳 찾는데인적만 남은 텅빈 한길에서 내가왜 부르르 부르르 낙화하여 몸떨었는가남도에서 꽃샘바람에 흔들리던 잎새에보이지 않는 신음소리가 날 때마다피같이 새붉은 꽃송이가 벙글어우리는 인간의 크고 곧은 목소리를 들었다갖가지 꽃들 함께 꽃가루 나눠 살려고향기 내어 나비떼 부르기도 했지만너와 나는 씨앗을 맺지 못했다이 봄을 아는 사람은 이 암유도 안다여름의 눈부신 녹음을 위해우리는 못다 핀 꽃술로 남아 있다

4월의노래 /곽재구

4월의노래  곽재구  4월이면등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며첼로 음악을 듣는다바람은마음의 골짜기골짜기를 들쑤시고구름은 하늘의큰 꽃잎 하나로마음의 불을 가만히 덮어주네노래하는 새여너의 노래가 끝난 뒤에내 사랑의 노래를다시 한번 불러다오새로 돋은 나뭇잎마다반짝이는 연둣빛 햇살처럼찬란하고 서러운그 노래를 불러다오

4월의 소리 /유안진

4월의 소리 유안진 밤잠을 설친다 밤이슬에 묻어서 따라 내리는 별무리 떼지어 오고 가는 발자국 소리 덧문을 치고 가는 바람결 타고 오는 소리 촉 트고 움돋고 새순 터지는 소리 소리에 새벽잠도 설친다 아기 종 꾸러미 째로 마구 흔들어 쌓는 개나리꽃 피는 소리 탓에 가래 끓어 밭은 기침 연신 뱉어내는 소리 탓에 수유리 돌밭에서 잠든 돌들 깨어 일어나는 소리 탓에

4월 엽서 /정일근

4월 엽서 정일근 막차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는 하마 분분한 낙화 끝나고 지는 꽃잎 꿏잎 사이 착하고 어린 새 잎들 눈뜨고 있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교정 4월 나무에 기대어 낮은 휘파람 불며 그리움이 시편들을 날려보내던 추억의 그림자가 그곳에 남아 있습니까 작은 바람 한 줌에도 온 몸으로 대답하던 새 잎들처럼 나는 참으로 푸르게 시의 길을 걸어 그대 마을로 가고 싶었습니다 날이 저물면 바다로 향해 난 길 걸어 돌아가던 옛집 진해에는 따뜻한 저녁 불빛 돋아나고 옛 친구들은 잘 익은 술내음으로 남아 있겠지요 4월입니다 막차가 끝나기 전에 길이 끝나기 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