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폭포/이형기

종이연 2021. 8. 19. 19:59

폭포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좋은 시 느낌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향길 /신경림  (0) 2021.08.21
늦여름/석승면  (0) 2021.08.20
가까움느끼기/용혜원  (0) 2021.08.18
팔월은/오광수  (0) 2021.08.17
편지 / 오세영  (0) 2021.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