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 도서관
최준
추장이 죽었다 9월
새들의 비망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먹구름을 끌고
마지막 벌크선이 사라진 행간으로 비가 내렸다
눈 먼 나무들이 나이테를 배회하는 동안
추장의 빈소, 도서관 가는 길은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아서 지워져 버렸나
천둥과 번개의 두근거림만으로도
슬픔은 한이 없었다
너무 긴 우기였다고, 헐거워진 창틀마다
이마에 화살 맞은 원숭이들이
바나나 잎 가면을 쓰고 앉아 책장을 넘겼다
문 잠긴 장서고는 꼬리처럼 어두웠다
반년에 걸친 추장의 장례식이 끝난 건
새들의 비망록 속 비밀지도가 날개를 잃고
멍청한 얼굴로 도보여행을 시작한 3월이었다
도서관을 리모델링하려는
공공연한 도벌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추장의 죽음은 발설되어서는 안 될
영원한 비밀
결코 회자되지 못할 새들의 비망록도
추장이 죽었다,로
끝나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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