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불타는 단풍 / 김소엽

종이연 2024. 10. 29. 21:11

불타는 단풍 

 

김소엽

당신이 원하시면
여름날 자랑스러웠던 오만의
푸르른 색깔과
무성했던 허욕의 이파리들도
이제는 버리게 하소서
혈육이 가지를
떠나빈 몸으로
당신 발 아래 엎드려
허망의 추억까지도
당신께 드리오리니
당신의 피로 물들여 주소서

바람이 건듯 불면
당신의 음향으로
내 젖은 영혼이 떨게 하시고
노을이 찾아들면
육신은 더욱 고운 당신빛으로
황홀한 색채를 띠게 하소서

푸르른 나는 가버리고
내 안에 당신이 뜨겁게 살아서
죽어도 영원히 살아있게 하시고
머언 훗날
어느 순결한 신부의
일기장 속에 연서로 남아
당신의 사랑으로 물드는
한 장
불타는 단풍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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