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제비꽃 꽃잎 속 - 김명리

종이연 2008. 3. 4. 09:32
제비꽃 꽃잎 속 - 김명리




퇴락한 절집의 돌계단에 오래 웅크리고
돌의 틈서리를 비집고 올라온
보랏빛 제비꽃 꽃잎 속을 헤아려본다

어떤 슬픔도 삶의 *산막 같은 몸뚱어리를
쉽사리 부서뜨리지는 못 했으니

제비꽃 꽃잎 속처럼 나 벌거벗은 채
천둥치는 빗속을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내 몸을 휩싸는 폭죽 같은 봄의 무게여

내가 부둥켜안고 뒹구는 이것들이
혹여라도 구름 그림자라고는 말하지 말아라

네가 울 때, 너는 네 안의 수분을 다하여 울었으니

숨 타는 꽃잎 속 흐드러진 *암향이여
우리 이대로 반공중半空中에 더 납작 엎드리자

휘몰아치는 봄의 무게에
*대적광전 기우뚱한 추녀 또한 뱃고동 소리로 운다.





*산막山幕 - 산 속에 아무렇게나 임시로 지은 집
*암향暗香 - 그윽히 풍기는 향기
*대적광전 - 절의 법당가운데 비로자나블을 본존불상으로 모시는 본당


(현대시작품상 2006년 5월 추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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