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서경
마종기
첩첩 깊은 산중 한구석에서 소리치고 찾아 헤맨다. 비맞고 눈 내리고 바람 부는 온 계절을 헐어가는 짐승이 되어, 눈은 닳아서 찢어지고 발은 피멍이 되어. 해가 바뀌고 아직 다 늙기 전에 나는 참다가 이 가을에 모닥불을 붙인다. 바람이 분다. 불이 넓게 붙는다. 온 산에 외롭고 고달픈 모든 영혼이 불탄다. 산도 타고 나도 타고 천지를 깨끗이 한 뒤, 드디어 내 눈에 당신이 보이고 내가 연꽃의 밤낮을 뛰어 우리는 만나고 어루만지고 포기하고. 그러나 결국은 모두 타서 숯이 되어 우리가 손 잡고 있으면, 한 천년쯤 뒤에 그 숯을 태우는 젊은 애인들이 우리가 아직도 밝고 뜨겁게 타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리라.
변경의 꽃, 지식산업사,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