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겨울 산 /엄영란

종이연 2023. 2. 12. 17:05

겨울 산

 

엄영란

 

숲을 따라 올라갑니다.

나뭇잎 흔들리던 소리가 나무 아래 쉬고 있습니다.

새가 앉았던 자리를 안고 나무는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집을 버린 새들의 집이 텅 비어 있습니다.

허공을 맴돌던 새 한 마리가 허공 속으로 날아갑니다.

발아래 흙들이 스멀거리고 마른 풀잎이 수런거립니다.

바람이 붑니다.

산허리를 감고 문득 길이 꺾어집니다.

그 너머의 나무가 눈을 벗어납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가는 나의 밑바닥부터 숨이 차 오릅니다.

흐르는 물에 목을 축입니다.

가시가 무디어지지 않은 망개 넝쿨이

나무와 나무를 얼기설기 감고는 물기가 빠져나간 몸을 버티고 있습니다.

비탈길에서는 몸이 기우뚱거립니다.

썩지 못한 낙엽이 제멋대로 뒹굴다 멈추어 섭니다.

내 안에서 썩다 남은 것들이 소리를 냅니다.

다 내려놓은 것들은 제 자리에서 검어집니다.

나무들을 품고 겨울 산이 어두워집니다.

산 중턱에 걸린 하늘이 허물어집니다.

먼 곳으로부터 환하게 길이 돌아듭니다.

'좋은 시 느낌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산을 오르며 /김주안  (0) 2023.02.14
겨울 산에서 /류인순  (0) 2023.02.13
달/ 박목월  (0) 2023.02.11
달/ 김동명  (0) 2023.02.10
낮달의 비유/ 문태준  (0) 2023.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