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4월 /정영애

종이연 2024. 4. 11. 21:34

4월

 

정영애

 

사랑을 한 적 있었네

수세기 전에 일어났던 연애가 부활되었네

꽃이 지듯 나를 버릴 겸심을

그때 했네

모자란 나이를 이어가며

서둘러 늙고 싶었네

사랑은 황폐했지만

죄 짓는 스무 살은 아름다웠네

자주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곤 했었네

활활 불 지르고 싶었네

나를 엎지르고 싶었네

불쏘시개로 희박해져가는 이름

일으켜 세우고 싶었네

그을린 머리채로 맹세하고 싶었네

 

나이를 먹지 않는 그리움이

지루한 생에 그림을 그리네

기억은 핏줄처럼 돌아

길 밖에 있는 스무 살, 아직 풋풋하네

길어진 나이를 끊어내며

청년처럼 걸어가면

다시

필사적인 사랑이 시작될까 두근거리네

습지 속 억새처럼

우리 끝내 늙지 못하네

'좋은 시 느낌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과 아침 /오규원  (0) 2024.04.14
4월 /조창환  (0) 2024.04.12
4월 /이응준  (0) 2024.04.10
4월 /오세영  (0) 2024.04.09
4월 /변영숙  (0) 2024.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