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하나 ~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종이연 2008. 7. 31. 10:04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 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 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정 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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