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담쟁이
정찬일
저 수많은 잔뿌리 좀 봐
담쟁이가 꿈속을 오르고 있어
길 한 모퉁이 콜타르 먹인 판자를 차고 하늘 오르는 담쟁이 좀 봐
판잣집도 오래 견디다 보면 잔뿌리 내리며 담쟁이가 오르고 있어
오르는 일만으로도 한생애를 다 보낼 수 있겠군
고향을 떠나온 지 얼마나 되는지 몰라
수맥이 다 마른 담쟁이의 아랫도리
그 아래로 하교길 아이들의 웃음소리
내 어릴 적 울음소리도 가끔씩 들려
내게도 길이 있었지
무심히 자란 계절의 그림자를 다 떨치고
딱딱한 겨울 햇살 속으로
푸른 실핏줄을 다 드러낸 담쟁의 길
불량한 겨울바람이 지나다가 툭 건드리면
줄기 끝으로 치올린 생장점들이 잠에서 막 깨어나
한 계절 파랗게 터뜨려버릴 것 같은 담쟁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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