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봄날
황인숙
요번 추위만 끝나면
이 찌무룩한 털스웨터를 벗어던져야지
쾌쾌한 담요도 내다 빨고
털이불도 걷어치워야지.
머리를 멍하게 하고 눈을 짓무르게 하는 난로야
너도 끝장이다! 창고 속에 던져넣어야지.
(내일 당장 빙하기가 온다 해도)
요번 추위만 끝나면
창문을 떼어놓고 살 테다.
햇빛과 함께 말벌이
윙윙거리며 날아들 테지
형광등 위의 먼지를 킁킁거리며
집터를 감정할 테지.
나는 발돋움을 해서
신문지를 말아쥐고 휘저을 것이다.
방으로 날아드는 벌은
아는 이의 영혼이라지만.
(정말일까?)
아, 이 어이없는, 지긋지긋한
머리를 세게 하는, 숨이 막히는
가슴이 쩍쩍 갈라지게 하는
이 추위만 끝나면
퍼머 골마다 지끈거리는
뒤엉킨 머리칼을 쳐내야지.
나는 무거운 구두를 벗고
꽃나무 아래를 온종일 걸을 테다.
먹다 남긴 사과의 시든 향기를 맡으러
방안에 봄바람이 들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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