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이기철
2월은 어라연이나 구절리쯤에 놀다가 미루나무 가지가 건드리는 기척에 놀라 횡계 묵호를 거쳐 산청 함양 거창을 지나온 듯합니다 무릎 어딘가에 놋대접을 올려놓고 고방에서 자꾸 방아깨비 여치 날개 소리를 꺼내 담습니다 그냥 놔둬도 저 혼자 놀며 안 아플 햇빛을 억새 지릅으로 톡톡 건드려보는 2월 아침이 또 마당가에 와 엽서처럼 조그맣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예순 해를 산 우리 집 마당이 난생 처음 와본 서양나라의 제과점 앞뜰 마냥 서투러져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자꾸 살핍니다 나도 이 땅에 와서 아이 둘 낳고 빛 좋은 남향집 하날 얻기도 했지만 세상 속으로 아이들은 헤엄쳐 나가고 나 혼자 맞는 아침은 처음 오는 햇살처럼 추웁습니다 새 뱃속으로 들어간 씨앗들도 꼼지락거리며 새똥으로 나와 다시 움틀 기세입니다 생육이란 활발하고 무겁고 욱신거리는 모양이어서 침묵 안에서도 그 소리 다 들립니다 이제 밥상으로 돌아가면 음악보다 아름다운 수저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혼자라 하겠습니까 사람이 없어도 세상이 왁자지껄합니다 도저히 귀를 막을 수 없는 2월 아침입니다 한 그릇 흰 사발에 금방 지은 따뜻한 밥을 담겠습니다 그리고 올해 처음 여는 문소리로 밖을 나가겠습니다 2월 아침엔 작년 가을 어미나무가 아들잎새를 기다리던 그 기다림으로 하루를 열 요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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