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서시
이영춘
한 풍경이 걸어 나가고 또 한 풍경이 걸어 들어온다
거대한 회전문이 오체투지로 지구를 밀어 올린다
“주여, 지난 계절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지구 저 반대 편 시인이 한 계절을 닫고 또 한 계절을 노래하였듯이
이 땅에도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고 청춘들이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듯이
또 다른 회전문이 열리고 닫힐 것이다
가을 이파리 떨어지듯 갈꽃 여자의 머리카락은 수북이 쌓이고
별들은 아직 이빨이 돋아나지 않은 아기 웃음소리로 반짝반짝
계절을 알릴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지상에는 신의 전령 같은 눈이 내릴 것이다
나는 그 눈雪 속에서 더러워진 입술과 탐욕을 버려야 할 것이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나의 계절이 이 땅에서 풍성한 열매와 구름떼 같은 羊의 들판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마지막 숨 몰아쉬는 시간의 햇살을 사흘만 더 쏟아 부워 주옵소서
내 몸이 다 비워지고 가벼워지면 나는 깃털처럼 이 지상을 떠날 것입니다.
오늘은 햇살 맑은 오후, 당신의 품 안에서 무르익는 풍성한 열매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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