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깊은 방 / 정복여

종이연 2007. 11. 26. 13:34
깊은 방 / 정복여 내가 세들어 사는 이 곳에 아주 오래된 연못하나 있었다 계약서에는 없던 무수한 물방울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자 사각의 방 모서리를 허물며 둥글게 안으로 흘러들었다 내 호흡의 울림으로 연못은 여러 개의 둥근 원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둥글게 흔들린 물방울들이 놀라 서로의 몸을 바라보면 그 빛에 잠을 깬 물개암나무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수면 위에는 오래된 연잎이 몇몇 모여 아직 오지 않은 꽃을 기다린다고 말하였다 몸 기울여 연잎의 깊은 뿌리를 들여다보았을 때 그곳에 나 이전의 어떤 빛이 나를 보고 있었다 흰 달의 그림자 같기도 한 그 빛은 내게 무슨 말을 하는 듯 못의 한가운데 솟은 작은 산 하나 보여주었다 산은 연못보다 더 오래된 깊이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사자처럼 생긴 바위는 연잎의 뿌리에 닿아 그 뿌리에 사는 빛의 그림자를 안고 있었다 나는 그 바위 아래서 잠이 들었다 내가 눕자 연못도 함께 누웠다 그리곤 보일 듯 말 듯한 바닥을 내게 주었다 그 이후 나는 날마다 내 열쇠 하나로 어떻게 이 연못을 잠가두고 나갈 수 있을까 걱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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