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하나 ~

십자가의 길 - 클라렌스 엔즐러

종이연 2009. 7. 14. 11:59


♤-십자가의 길 - 클라렌스 엔즐러-♤


-떠나기에 앞서


지금 네가 떠나려는 이 십자가의 길은
너 홀로 걸어가는 길이 아니다.
나와 함께 걸어간다.

비록 너는 너, 나는 나이지만
우리는 하나의 그리스도로서 걷는다.
나는 너를 ‘내 다른 자아’라 부르겠다.

내가 내 창조물인
사람의 살과 뼛속에 들어와
사람의 생명을 취하였으니
정말로 나와 너는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000년 전 내가 걸었던 십자가의 길과
지금 네가 걷고 있는 십자가의 길도
또한 같다.
그러나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의 삶은
죽음의 관을 쓰고서야 완성되었다.
네가 열내 곳을 거쳐 가는 이 십자가의 길은
네 삶의 관을 쓰고 가야만 비로소 완성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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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 역시 내 다른 자아
그가 나를 심판한다.
나는 이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알고 있다.
비록 의롭지는 못하지만
그는 합법적 권좌에서 나를 다스리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이 순종하고 있다.

아버지의 뜻이기에
내가 빌라도의 판결에 순종하듯이
내가 너보다 윗자리로 보내는 사람들에게
너도 순종을 할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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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이 큰 나무 덩어리는
아버지께서 손수 고르시어 내게 주신 것이다.

네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대체로 너의 일상 생활에서 생겨나는 것들.
그 역시 아버지께서 손수 고르시어 네게 주시는 것이다.
나아가 정중히 받아라.

내 다른 자아야, 용기를 내어라.
네가 짊어질 짐이 한 근이라도 더 네 힘의 한계를 넘지 않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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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만드시고
뜻대로 움직이시는 하느님이
나무 한 토막 무게에 눌려 쓰러지고 마는
한낱 나약한 인간이 되었다.

하느님 아들의 이 나약한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냐.
내 아버지의 뜻이 그러하셨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는 너의 본보기가 될 수 없다.

네가 진정 나의 다른 자아가 되려거든
너도 네 자신의 나약함을 비관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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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
채찍질로 해어진 살, 짐승 다루듯 걷어채인 내 몰골,
살 터지고 멍든 내 모든 타박상을 일일이 헤아려 보고 계신다.
어머니 영혼은 신음하며 울부짖어도
당신 입술에선
저항이나 원망 섞인 말 한마디 새어 나오지 않고
아예 생각조차 드러내 보이시지 않는다.

어머니는 나의 순교를 함께하신다.
나는 어머니의 순교를 함께하고 있다.
주고받는 눈길 속에 애통한 마음 숨김없이 오간다.
이것은 내 아버지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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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나 혼자 힘으로는 십자가 지고 한 발자국도 더 뗄 수 없다.
급기야 로마 병사들이 시몬을 시켜 내 십자가 운반을 거들에 한다.

시몬도 너처럼 나의 다른 자아,
너도 시몬처럼 나에게 힘을 빌려 다오.

네 이웃의 어께에 메인 짐을 네 손으로 받쳐 줄 때마다,
네 손은 나를 짓누르는 이 무거운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 주는
고마운 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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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른 자아야,
너는 피땀으로 범벅이 된 내 얼굴
용감하게 나서서 닦아 줄 수 없겠느냐?

내 얼굴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거냐?

눈물 고인 집안 식구 얼굴들,
긴장감이 감도는 직장에도,
놀이터, 달동네에도, 법정, 병원, 그리고 교도소에도,
아니, 괴로움이 있는 곳 어디에나 내 얼굴이 있다.
거기서 나는 너를 찾는다.
내 얼굴의 피와 눈물을 좀 닦아 주었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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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른 자아야, 이 단계에서
쓰러지기 잘하는 너의 의지를 시험하련다.
이번에 내가 또 쓰러진 이유는
일단 시작한 일은 끈기 있게 진행시켜
선행으로 매듭 짓도록 가르치기 위해서다.

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여기고
“더 이상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
무거운 짐을 진 나에게로 오노라.
그러면 네게 휴식을 주겠다.

어서 나만 믿고 계속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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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루살렘의 내 자녀들을 한데 모으려고 그토록 애를 태웠건만
사람들은 들은 척도 안했다.

그런데 지금 이 여인네들은 나를 보며 울고 있다.
가엾다는 마음에 나는 그들을 위해 울고 잇다.
앞으로 닥쳐올 그들의 슬픈 미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위로를 보내는 이 여인네들의 눈물에
나도 위안의 말을 보낸다.

나의 다른 자아야, 온유를 품고
따뜻한 마음 베풀면 너는 나를 닮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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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하여 자갈길 바닥 위에 너부러진 내 몸,

이제 옴짝도 못한다.
주먹질, 발길질, 채찍질에 나는 무릎 한번 펼 기력조차 없다.

그래도 내 뜻만큼은 내 것이듯이
너의 뜻은 너의 것이다.

내 다른 자아야, 이 점은 알아두어라.
너의 몸은 부서질지라도
세상, 아니 지옥의 그 어떤 것이라도 너의 뜻을 앗아갈 수는 없다.


너의 뜻은 언제나 너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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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라, 내 다른 자아야,
세상에서 가장 딱하고 가난한 왕인 나,
바로 내가 만든 내 피조물 앞에서 벌거벗긴 채 서 있는 나를 보아라.
십자가는 나의 죽음의 침상, 이것마저 내 것이 아니로구나.

그러나, 나만큼 부유한 사람이 누가 있더냐?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는 모든 것 다 가졌다.
아버지의 사랑 말이다.

너도 모든 것 다 가지려거든
먹을 것, 입을 것, 네 목숨 때문에 걱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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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자가 처형이 어떤 것인지 상상이 가느냐?

사형 집행인들이 내 팔을 잡아 끌어당긴다.
손과 손목을 나무 위에 밀착시킨 후
내 살 꿰뚫을 대못을 들여대고 묵직한 망치로 사정없이 내리치는자
내 머리 속에서 폭약이 터지는 듯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아픔에
영혼의 비명 소리 터져 나온다.

연이어 다른 팔을 움켜 잡고......까무러칠 듯한 아픔에
내 입에서 격한 신음 소리 뿜어 나온다.

그 다음, 무릎을 들어올려 발바닥을 나무에 압착시키고
사정없이 망치로 못질한다.





이제 십자가는 내 사랑의 작별을 고하는 자리가 되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목마르다”

“이제 다 이루었다.”

말을 하려면 손과 발에 힘이 들어가야 하고
조금만 꿈틀거려도 몸,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새로이 깨어난 아픔이 온몸의 신경에 흘러 퍼진다.

이제 달려 있을 만큼 달려 있다가
한번 죽을 내 목숨은 사람의 속성 다 비우고
가물가물...... 마침내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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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생 제사를 마쳤다.
그렇다. 나의 미사는 끝났다.
그러나 내 다른 자아야,
내 어머니와 너의 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내 어머니는 내가 아기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목숨 끊어져 있는 내 몸을 당신 팔로 안으셔야먄 한다.
너 역시 사랑하는 이들이 이 세상 떠날 때
내 어머니처럼 비탄의 슬픔을 맛보아야 한다.

사별의 슬픔을 맞거든 이것을 생각하여라.
내 어머니 마리아
내 갈바리아의 고난 함께하여
수많은 영혼 구하셨다.
너의 슬픔 역시 영혼들 구하는 값진 대가가 될 수 있음을.





이렇게
한번은 죽어야 할 내 목숨은 끝이 났다.

이제부터 내 어머니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너를 위한
다른 생명이 시작된다.

세상에서 내 생애의 사업은 마무리되었다.
이제 내 교회 안에서, 내 교회를 통해
나의 새 사업을 시작하련다.

내 다른 자아야, 네게 바란다.
이제부터 하루하루 나의 사도가 되고,
나의 희생 제물이 되고,
나의 성인이 되어다오.





- 길이 끝나고


내 다른 자아야,
이 길을 시작하기 전에 너에게 일러주었다.
내 삶이 죽음의 관을 쓰고서야 완성되었듯이
너의 ‘길’은 너의 삶의 관을 쓰고 가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네가 살며 맞이하는 상황 하나하나는
내 뜻을 담아 너에게 보내는 나의 하사품이다.

받아라, 그리고 믿어라.
“이루어지소서” 한마디와
“하겠습니다” 숨소리 한번이면
든든한 나의 도움이 있을 것임을.

주님,
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도와 주소서!


- 클라렌스 엔즐러의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십자가의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