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내리는 비
안선희
삭풍 한파로 곤두박질치던 겨울이
영상을 기록한 저녁
파르레 흩날리는 가랑비를
우산도 없이 맞이했다
잿빛 억새 모가지 길게 빼고 섰을 뿐
모두가 동면에 빠진 벌판에
어디엔가 숨겼던 빛깔이
여기저기서 피어났다
파아란 가로등 아래
다양한 색깔이 희미하게 타올랐다
어느덧 굵어진 빗줄기에
종종 걷던 발길 멈추고
휴대전화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그러나 나중에 열어보니
검푸른 영상만 뿌옇게 담겼다
겨울비는 꽁꽁 언 벌판을
호호 입김으로 녹이고
채색 옷을 입혀 주었다
히틀러가 전쟁터에서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놓지 않았듯이
차가운 겨울의 들판도
따스함을 감추고 있었나 보다
12월의 겨울비를 맞으며
나는 문득 시가 쓰고 싶어졌다
여인의 핸드백에 담긴 립스틱처럼
누군가의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작은 시집이 되고 싶어졌다
'좋은 시 느낌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은 /하영순 (0) | 2021.12.14 |
---|---|
12월의 기도 /최이천 (0) | 2021.12.13 |
섣달 /신창홍 (0) | 2021.12.11 |
12월엔 /용혜원 (0) | 2021.12.10 |
12월의 기도 /곽현의 (0) | 2021.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