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고두미 마을에서/도종환

종이연 2024. 3. 1. 17:42

고두미 마을에서

 

도종환

 

   부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 사당을 다녀오며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이 내린다.

오동나무함에 들려 국경선을 넘어 오던

 

한줌의 유골 같은 푸스스한 눈발이

동력골을 넘어 이곳에 내려온다.

꽃뫼 마을 고령 신씨도 이제는 아니 오고

금초하던 사당지기 귀래리 나무꾼

 

고무신 자국 한 줄 눈발에 지워진다.

복숭나무 가지 끝 봄물에 탄다는

삼월이라 초하루 이 땅에 돌아와도

영당각 문풍질 찢고 드는 바람소리

 

발 굵은 돗자리 위를 서성이다 돌아가고

욱리하 냇가에 봄이 오면 꽃 피어

비바람 불면 상에 누워 옛이야기 같이 하고

서가에는 책이 쌓여 가난 걱정 없었는데*

 

뉘 알았으랴 쪽발이 발에 채이기 싫어

내 자란 집 구들장 밑 오그려 누워 지냈더니

오십 년 지난 물소리 비켜 돌아갈 줄을.

눈녹이 물에 뿌리 적신 진달래 창꽃들이

 

앞산에 붉게 돋아 이 나라 내려볼 때

이 땅에 누가 남아 내 살 네 살 썩 비어

고우나고운 핏덩어릴 줄줄줄 흘리련가.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은 내리는데.

 

* 12­14행은 단재(丹齋) 선생의 한시(漢詩) 형기일(家兄忌日)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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