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감자를 씻으며 / 정호승

종이연 2008. 3. 21. 13:42
감자를 씻으며 / 정호승




흙 묻은 감자를 씻을 때는

하나하나씩 따로 씻지 않고 한꺼번에 다 같이 씻는다

물을 가득 채운 통 속에 감자를 전부 다 넣고

팔로 힘껏 저으면

감자의 몸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면서 흙이 씻겨나간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도

흙 묻은 감자가 서로 부딪히면서

서로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과 같다

나는 오늘도 물을 가득 채운 통 속에

내 죄의 감자를 한꺼번에 다 집어넣고 씻는다

내 사랑에 묻어 있는 죄의 흙을 제대로 씻기 위해서는

죄의 몸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게 해야 한다

흙 묻은 감자처럼

서로의 죄에 묻은 흙을 깨끗하게 씻어주기 위해서는

'좋은 시 느낌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라지는 침묵 속에서  (0) 2008.03.21
인연의 잎사귀 / 이해인  (0) 2008.03.21
봄에 앓는병 / 이수익  (0) 2008.03.21
매듭 / 장흥진  (0) 2008.03.21
봄날 / 김용택  (0) 2008.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