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8』(조선일보 연재, 2008)
'좋은 시 느낌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명한 속/이하석 (0) | 2019.10.06 |
---|---|
꽈리/김유석 (0) | 2019.10.05 |
국토서시(國土序詩)/조태일 (0) | 2019.10.03 |
조국(祖國)/정완영 (0) | 2019.10.02 |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0) | 2019.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