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일찍이 나는/최승자

종이연 2019. 10. 4. 20:06

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8』(조선일보 연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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