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예언(豫言)
오탁번
추운 겨울 산(山)과 들 사이로
따듯한 강(江)이 숨어 흐르듯
추울수록 강(江)은 따듯해지고
모든 가까이 있는
사물(事物)이 눈물겹고 고맙듯
서러운 몸에서
뜨거운 사랑이 태어나고
온 오물(汚物)속에서 이름모를
풀씨는 싹튼다.
말구유에서 나신 그대는
별이 내리고
뜻있는 자(者)가 경배할 때
아침과 저녁, 암흑과 광명을
분별할 시간도 장소도
없는 전지(全知)의 하늘.
글 아는 사람 노릇
하기 힘든 대낮에
그대여, 우리도 2천년전 아침처럼
그 빛깔의 하늘 아래 있게 하라.
서러운 몸과 마음을
분별할 시간도 장소도
없는 하늘과 땅에서,
이름모를 풀씨는 싹튼다.
어두워도 한 닷새 어두우면 좋지
열두달 어둡지는 말아야 되는 법,
언덕에 부는 제천(堤川)의 바람이여
숲은 잎을 떨구었지만
그 안에 바람의 속도를 잠재운다.
열매의 양분을 아낀다.
바람은 중앙선에서 고속도로에서
시속을 자랑하며 살아가지만
글 아는 사람들은
스토브 위에 무위를 끓인다.
한 두컵 마시며
목이 떨어지는 전봉준(全琫準)의 사랑을
노래하며 춤추며 부끄럽다.
일주일 전에 땅에 오신 그대는
산(山)과 들 사이로
따듯한 강(江)을 주시고
강물을 뿌리며 죄를 씻으셨지만
별을 따라 주인을 찾아 가는
현자(賢者)의 야행(夜行)처럼
부활의 시대는 어둡고 길다
어둡고 길다.
손바닥에 박히는 형벌의 아픔이
진실로 구원의 기쁨이기를
땅의 평화이기를.
제천(堤川)의 바람이여
서러운 몸과 마음이여
추운 들 사이로 흐르는
따듯한 예언(豫言)을
이 새 아침에 이해하리라.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청하,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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