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림자
최정례
산천동 간절히 가고 싶었지만 못 갔어요
병이 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는 길인데
연초록의 어린 순을 내민 가로수들이
길바닥에 그림자를 눕혀 놓고 있었어요
나무 어린 그림자 밟고 지나가는데
내 속에 그림자도 막무가내로 누워버리겠다는 거예요
산천동 꽃그늘에 덮인 산동네는
얼마나 처연한 빛을 띠고 있을까요
나도 술을 마시고 취해
누워 헛소리를 할 수 있다면
그런데
늑대의 털을 걸쳐 입은 내 그림자 벌떡 일어나더니
어리고 생생한 잎을 먹어치우고
그것들 헤치고 달렸어요
달리는 버스 지붕
길가에 조그만 상자까지도 다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었어요
모르는 척 마구 밟고 갔어요
영혼이라는 게 있을라구요
상자곽 같은 게
무심코 흔들리는 나무가지 같은 게
빌딩 꼭대기에 약간만 석양이 남아
그 위를 붉은 구름이 더돌고
아이는 계속 열이 올랐어요
그림자 점점 자라 한 저녁을 덮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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