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을 추억함
나호열
서러운 나이 그 숨찬 마루턱에서
서서 입적한 소나무를 바라본다
길 밖에 길이 있어
산비탈을 구르는 노을은 여기저기 몸을 남긴다
생이란 그저 신이 버린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풀꽃이었을까
하염없이 고개를 꺾는 죄스런 모습
아니야 아니야 머리 흔들 때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검은 씨앗들
다버린 눈물로 땅 위에 내려앉을 때
가야할 집 막막하구나
그렇다 그대 앞에 설 때 말하지 못하고
몸 뒤채며 서성이는 것
몇 백년 울리는 것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었던가
향기를 버리고 빛깔을 버리고
잎을 버리는 나이
텅 빈 기억 속으로
혼자 가는 발자국 소리 가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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