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34

11월을 빠져나가며 /정진규

11월을 빠져나가며  정진규                     흙담장에 걸린 먼지투성이 마른 씨래기 다발들남루한 내 사랑들이 버석거린다아직도 이파리들 땅에 내려놓지 못할 몇 그루 은행나무들이 이해되지 않으며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다른 이들의 철 지난 사랑이 이해되지 않는다혼자서 돌아오는 밤거리 골목길에 버려진 고양이들이 날로 늘어나고나는 자꾸 올라가고 있는데 계단들은 그만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비어지고 있다빈 계단들이 허공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이제 너에게로 돌아가는 길은 위기로만 남아 있구나골목길 들어서면 겨우 익숙한 저녁 냄새만 인색하게 나를 달랜다이 또한 전 같지 않다12월 때문에 11월은 가장 서둔다끝나기 전에 끝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들통나고 있다야적까지 하고 있는 빈터, 그빈터에서도 우리..

11월 이후 / 진 란

11월 이후    진 란    지순한 하늘에 몇 개의 이파리 팔랑이며따순한 햇살에 맨 몸 다 드러내고 남루한 숨소리 몇 바람 지나더니욕심 비워 나목일래검은 둥치의 발등에 풀새들 내려앉은오후, 곰실곰실 피어난 비탈에 서서 꿈을 몰아 뿌리 올리는 연리봉으로만나고저, 오래오래 바라다가 눈부처 들어연리지로 맞잡은 손, 천년고독을 기다리는나무로 서고저

오늘(2024,11,18)의 말씀에서 샘솟은 기도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주님!제가 보지 못함은 태양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눈을 감고 있는 까닭입니다.마음이 완고한 까닭입니다.성전 휘장을 찢듯, 제 눈의 가림막을 걷어 내소서!완고함의 겉옷을 벗어던지고, 깊이 새겨진 당신의 영혼을 보게 하소서!제 안에 선사된 당신 사랑을 보게 하소서.제 안에 벌어진 당신 구원을 보게 하소서.제가 바라고 싶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해주시고 싶은 것을 바라게 하소서!아멘. -이영근 신부

기도 하나 ~ 2024.11.18

오늘(2024,11,17)의 말씀에서 샘솟은 기도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마르 13,28) 주님!그날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비참함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가 아니라 그 비참함 한가운데로 찾아옵니다.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다른 곳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입니다.오늘의 결별에서 새롭게 변형되게 하소서.오늘의 죽음에서 새롭게 탄생하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

기도 하나 ~ 2024.11.17

위령 성월 기도 <시편 129>

위령 성월 기도 ○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 들으소서.○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사와더 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제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오며,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제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주님께는 자비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음이오니○ 당신께서는 그 모든 죄악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리이다.† 기도합시다.사람을 창조하시고,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어,주님을 섬기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그들이 바라던..

기도 하나 ~ 2024.11.16

노숙 / 박진성

노숙           박진성 십일월 은행잎에 누웠다새벽 고요 부서지는 소리응급실보다 환했다아스팔트 뒤덮은 잎맥들은 어느 나라로 가는 길인가등짝에 달라붙은 냉기를 덥히느라 잎들은분주하다 갈 곳 없는 내력들처럼잎잎이 뒤엉킨 은행잎 사원에서 한참을 잤다사랑할 수 없다면 마지막 길도 끊어버리겠다은행잎 한 잎, 바스라져 눈가에 떨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내가 사랑하는 계절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11월이다더 여유있게 잡는다면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나무들이 개끔발을 딛고 선 등성이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황토 흙의 알몸을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時祭 지내려 갔다가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콧노래 함께 돌아오는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가져오는 對送 꾸러미를 기다리던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늦가울부터 초겨울까지다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못 견디게 사랑하는 ..

오늘(2024,11,15)의 말씀에서 샘솟은 기도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루카 17,33) 주님!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향하여 살게 하소서.제 삶이 썩어 부패한 시체의 삶이 되지 않게 하소서.당신 말씀이 살아 팔딱거리는 생명의 삶이 되게 하소서.자신의 보존을 향한 죽음의 삶이 아니라, 타인을 향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생명의 삶이 되게 하소서.아멘. -이영근 신부

기도 하나 ~ 202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