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719

새해 아침의 기도 / 김남조

새해 아침의 기도 김남조 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 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득한 날에 예비하여 가꾸신 은총의 누리 다시금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 젊디젊은 심장으로 시대의 주인으로 사명의 주춧돌을 짐지게 하소서 첫 눈뜸에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고 서로의 속사랑에 기름 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 생명의 생명인 우리네 영혼 안엔 사철 자라나는 과일나무 숲이 무성케 하시고 제일로 단맛나는 열매를 날이날마다 주님의 음식상에 바치게 하옵소서

육십오년의 새해 / 김수영

육십오년의 새해 김수영 그때 너는 한 살이었다 그때 너는 한 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奇蹟)이었다 그때 너는 여섯 살이었다 그때 너는 여섯 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奇蹟)이었다 그때 너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때 너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이었다 너의 의지(意志)는 싹트기 시작했다 너의 의지(意志)는 학교 안에서 배운 모든것이 학교 밖에서 본 모든 것이 반드시 정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의 어린 의사(意思)를 발표할 줄 알았다 우리는 너를 보고 깜짝놀랐다 그때 너는 열일곱살이었다 그때 너는 열일곱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이었다 너의 근육(筋肉)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너의 근육(筋肉)은 학교 밖에서 얻어맞은 모든 것이 골목길에서 얻어맞은 모든 것이 반드시 정말이 아니란 것을 알았고 너의 어린 ..

새해 새 아침은 / 신동엽

새해 새 아침은 신동엽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 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퀴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짓는다.

새해에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 정진하

새해에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정진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라. 간절한 소원을 밤마다 외쳐라. 지치면 지칠수록 더 크게 외쳐라. 더 큰 용기와 더 큰 꿈을 가져라. 가야될 인연의 길이 엇갈렸다면 후회말고 돌아서라. 꼭 그 길이 아니라도 성공으로 가는 길은 많다. 내 인연과 너의 인연이 평행선을 그으며 달려가지만 결국은 우리도 종점에서 텅빈 손으로 다시 만나리. 너무 많은 꿈을 가지고 덤비지 마라. 세상은 전쟁터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터다. 용서하고 화해하며 더 따뜻한 사람이 되라.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더 넓은 가슴으로 이 세상을 품어라. 새해에는 지난 날들의 악습을 버려라. 오늘 하지 못한다면 내일도 하지 못하는 법 오늘 조금이나마 전진했다면 일년 후 십년 후에는 꼭 성공하리니 조급..

12월의 아침 시간 /헤세

12월의 아침 시간 헤세 비는 엷게 베일 드리우고, 굼뜬 눈송이들이 잿빛 베일에 섞여 짜여 위쪽 가지와 철조망에 드리워져 있다 아래쪽 창유리에 오그리고 앉아 있다 서늘한 물기 속에서 녹아 유영하며 축축한 땅 냄새에 뭔가 엷은 것, 아무 것도 아닌 것 어렴풋한 것을 준다 또 물방울들의 졸졸거림에 머뭇거림의 몸짓을 주고, 대낮의 빛에게는 마음 상하게 하는 언짢은 창백함을 준다 아침에 눈먼 창유리들의 열 가운데서 장밋빛으로 따뜻한 흐린 광채가 어렴풋이 밝아 온다 외롭게 아직 창문 하나 어둠의 조명을 받아 간호원 하나 온다 그녀는 눈雪으로 눈眼을 축인다, 한동안 서서 응시한다 방으로 되돌아간다 촛불이 꺼진다 잿빛의 빛바랜 날 속에서 장벽이 늘어난다

세모 이야기/신동엽

세모 이야기 신동엽 싸락눈이 날리다 멎은 일요일 북한산성길 돌틈에 피어난 들국화 한송일 구경하고 오다가 샘터에서 살얼음을 쪼개고 물을 마시는데 눈동자가 그 깊고 먼 눈동자가 이 찬 겨울 천지 사이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더라 또, 어느 날이었던가 광화문 네거리를 거닐다 친구를 만나 손목을 잡으니 자네 손이 왜 이리 찬가 묻기에 빌딩만 높아가고 물가만 높아가고 하니 아마 그런가베 했더니 지나가던 낯선 여인이 여우 목도리 속에서 웃더라 나에게도 고향은 있었던가 은실 금실 휘황한 명동이 아니어도 동지만 지나면 해도 노루꼬리만큼씩은 길어진다는데 금강 연안 양지쪽 흙마루에서 새 순 돋은 무우을 다듬고 계실 눈 어둔 어머님을 위해 이 세모엔 무엇을 마련해 보아야 한단 말일까 문경 새재 산막 곁에 흰 떡 구워 팔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