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710

새아침에 /조지훈

새아침에 조지훈 모든 것이 뒤바뀌어 秩序를 잃을지라도 星辰의 運行만은 변하지 않는 法度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아침이 열려오누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지었던가 뜻두고 이루지 못하는 恨은 太初 以來로 있었나부다 다시 한 번 意慾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不退轉의 決意를 위하여 새아침은 오는가 낡은 것과 새것을 義와 不義를 삶과 죽음을ㅡ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山脈 위에 보라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波濤 위에 이글이글 太陽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날마다 새날 새마음 되게 하소서 / 안희두

날마다 새날 새마음 되게 하소서 안희두 새해 새날 새아침 학교 운동장에 둥근 해가 떠오른다 날이면 날마다 웃음이 뛰노는 운동장에 둥근 해 품에 앉고 달려오는 보람이와 나래 그리고 … 3월에 입학하는 눈꽃과 새봄이도 삼배하며 그려본다 올해는 마주칠 때마다 한 움큼 사랑을 주자 때마다 한 아름 꿈을 주자 헤어질 때마다 가슴 가득 희망을 심어주자 서해, 서산이 아니어도 아파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밉살스런 영수에게 앙증맞은 지혜에게 다 나누어주지 못한 사랑을, 꿈을, 희망을 첫 다짐을 낙조에 실어 보낸다 날마다 새날 새마음 되게 하소서

첫마음 / 정채봉

첫마음 정채봉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어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

새해 아침에 / 이해인

새해 아침에 이해인 창문을 열고 밤새 내린 흰 눈을 바라볼 때의 그 순결한 설레임으로 사랑아 새해 아침에도 나는 제일 먼저 네가 보고 싶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새로이 샘솟는 그리움으로 네가 보고 싶다 새해에도 너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가장 정직한 시를 쓰고 가장 뜨거운 기도를 바치겠다 내가 어둠이어도 빛으로 오는 사랑아 말은 필요 없어 내 손목을 잡고 가는 눈부신 사랑아 겨울에도 돋아나는 내 가슴 속 푸른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로 네가 앉아 웃고 있다 날마다 나의 깊은 잠을 꿈으로 깨우는 아름다운 사랑아 세상에 너 없이는 희망도 없다 새해도 없다 내 영혼 나비처럼 네 안에서 접힐 때 나의 새해는 비로소 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는다 내 묵은 날들의 슬픔도 새 연두 저고리에 자줏빛 끝동을 단다 아..

다시 새해의 기도 / 박화목

다시 새해의 기도 박화목 곤욕(困辱)과 아픔의 지난 한 해 그 나날들은 이제 다 지나가고 다시 새해 새날이 밝았다 동창(東窓)에 맑고 환한 저 햇살 함께 열려오는 이 해의 365일 지난밤에 서설(瑞雪) 수북히 내리어 미운 이 땅을 은혜처럼 깨끗이 덮어주듯 하나님, 이 해엘랑 미움이며 남을 업수히 여기는 못된 생각 교만한 마음 따위를 깡그리, 저 게네사렛의 돼지 사귀처럼 벼랑 밑으로 몰아내 떨어지게 하소서. 오직 사랑과 믿음 소망만을 간직하여 고달프나 우리 다시 걸어야할 길을 꿋꿋하게 천성(天城)을 향해 걸어가게 하소서. 이 해에는 정말정말 오직 사랑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난한 마음만이 이 땅에 가득하게 하소서, 하여 서로 외로운 손과 손을 마주 꼭 잡고 이 한 해를 은혜 속에 더불어 굳건히 살아가게 ..

새해 아침 / 송수권

새해 아침 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1 /이동순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1 이동순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기념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지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뭉치는 그대로 밀려 있는데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도 있는데 불현듯 불현듯 새해는 왔는가 기다리던 첫눈도 나리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왔는가 헛꿈을 잔뜩 안고 돌아와 저 혼자 설레이는 놈팡이처럼 새해는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