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저녁
김현승
긴 돌담 밑에
땅거미 지는 아스팔트 위에
그림자로 그리는 무거운 가을 저녁
짙은 크레파스의 가을 저녁
기적은 서울의 가장자리에서
멀리 기러기같이 울고
겹친 공휴일을 반기며
먼 곳 고향들을 찾아 가는
오랜 풍속의 가을 저녁
사는 것은 곧 즐거움인 가을 저녁
눈들은 보름달을 보듯 맑아 가고
말들은 꽃잎보다 무거운 열매를 다는
호올로 포키트에 손을 넣고 걸어가도
외로움조차 속내의처럼 따뜻해 오는
가을 저녁
술에 절반
무등차에 절반
취하여 달을 안고
돌아가는 가을 저녁 ㅡ
흔들리는 뻐스 안에서
그러나 가을은 여름보다 무겁다!
시간의 잎새들이 떨어지는
내 어깨의 제목 위에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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