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이 생명을/모윤숙

종이연 2008. 1. 20. 20:27
이 생명을/모윤숙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라시면 나는 가지요.

임이 살라시면 사오리다.
먹을것 메말라 창고가 비었어도
빚 더미로 엠집 채찍 맞으면서도
임이 살라시면 나는 살아요.

죽음으로 깊을 길이 있다면 죽지요.
빈 손으로 임의 앞을 지나다니요.
내 임의 원이라면 이 생명을 아끼오리.
이 심장의 온 피를 다 빼어 바치리다.

무엔들 사양하리, 무엔들 안 바치리.
창백한 수족에 힘 나실 일이라면
파리한 임의 손을 버리고 가다니요.
힘 잃은 그 무릎을 버리고 가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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