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겨울 모과나무 / 장석남

종이연 2021. 1. 5. 19:54

겨울 모과나무 

 

장석남

 

 

저녁에 아이 데리러 시립 어린이집에 간다
철문 기웃이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서 잠시 창에 이마 바짝 대고
어떻게 놀고 있나 내부를 들여다본다 잘 뵈지 않는다
아직은 밖이 더 훤한 까닭, 그러다
잠시 돌아서서
어린 모과 나무 가지들
만져 보기도 한다
맨질맨질한 살갗이 외출에서 돌아와
양말 벗으며 만지는 찬 발목
복숭아뼈께 같다

 

데리고 나온 아이 잠시 딴전을 피울 때
내게 오기 기다리며 다시 전지자국 아문
얇은 가지 사이 사이 올려다보면 어느새
어린 별들 돋아
모과나무에 돋은 매화 같다
가난한 집에 세든 세입자들
이런 이쁜 나무는
성욕없이 평생 만날 수 있는 여자 같다
나는 잠시 내 노년을 훔쳐보고
아이 걸리어 모과나무로 걸어 들어간다
아빠 손톱달
그래 손톱달
리키다 소나무 가지가 품고 있는
아빠 반달
그래 반달
며칠 후 이런 말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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