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94

푸른 오월/노천명

푸른 오월 노천명 청자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왠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씬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팥나물 호박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랑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

오월의 하루를 너와 함께/라이너 마리아 릴케

오월의 하루를 너와 함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오월의 하루를 너와 함께 있고 싶다. 오로지 서로에게 사무친 채 향기로운 꽃 이파리들이 늘어선 불꽃 사이로 하얀 자스민 흐드러진 정자까지 거닐고 싶다. 그곳에서 오월의 꽃들을 바라보고 싶다. 그러면 마음속 온갖 소망들도 잠잠해지고 피어나는 오월의 꽃들 한가운데서 행복이 이루어지리라. 내가 원하는 그 커다란 행복이.

5月 恨 / 김영랑

5月 恨 김영랑 모란이 피는 오월달 월계月桂도 피는 오월 달 온갖 재앙이 다 벌어졌어도 내 품에 남는 다순 김 있어 마음 실 튀기는 오월이러라. 무슨 대견한 옛날였으랴 그래서 못 잊는 오월이랴 청산을 거닐면 하루 한 치씩 뻗어 오르는 풀숲 사이를 보람만 달리던 오월이어라. 아무리 두견이 애닯아해도 황금 꾀꼬리 아양을 펴도 싫고 좋고 그렇기보다는 풍기는 내음에 지늘꼈건만 어느새 다 해-진 오월이러라.

5월의 축제/ 괴테

5월의 축제 괴테 대자연은 나를 향해 얼마나 찬란히 빛나는가! 초원 또한 어쩌면 저렇게 찬란한가! 나뭇가지마다 꽃들이 피어나고 덤불 속에선 수없는 노랫소리 들리노니 모든 이의 가슴에선 기쁨과 희열이 솟아나도다 오, 대지여, 태양이여! 오, 행복이여, 환희여! 오, 사랑이여, 오, 사랑이여! 저 산 위의 아침 구름같이 금빛 찬란하구나 신선한 들판 위에 그대 장엄한 축복을 내리니... 이 충만한 세계는 꽃안개로 넘치도다! 오, 소녀여, 소녀여, 내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대 눈은 한없이 반짝이고 있으니, 그대 또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종달새는 이렇게 노래와 대기를 사랑하고 아침의 꽃들은 하늘의 향기를 사랑하노니, 나 역시 피 뜨겁게 그대를 사랑하노라 그대는 내게 젊음과 기쁨과 용기를 주어 새로운 ..

5월의 느티나무/ 복효근

5월의 느티나무 복효근 어느 비밀한 세상의 소식을 누설하는 중인가 더듬더듬 이 세상 첫 소감을 발음하는 연초록 저 연초록 입술들 아마도 지상의 빛깔은 아니어서 저 빛깔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초록의 그늘 아래 그 빛깔에 취해선 순한 짐승처럼 설레는 것을 어떻게 다 설명한다냐 바람은 살랑 일어서 햇살에 부신 푸른 발음기호들을 그리움으로 읽지 않는다면 내 아득히 스물로 돌아가 옆에 앉은 여자의 손을 은근히 쥐어보고 싶은 이 푸르른 두근거림을 무엇이라고 한다냐 정녕 이승의 빛깔은 아니게 피어나는 5월의 느티나무 초록에 젖어 어느 먼 시절의 가갸거겨를 다시 배우느니 어느새 중년의 아내도 새로 새로워져서 오늘은 첫날이겠네 첫날밤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