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95

4월과 5월 /박정만

4월과 5월 박정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봄꽃보다 찬란하게 사라져간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너는 나를 그리며 더 큰 웃음을 웃고 있지만 네가 던진 함성도 돌멩이도 꿈 밖에 지고 모호한 안개, 모호한 슬픔 속으로 저 첫새벽의 단꿈도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사라진다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세월의 앙금처럼 가라앉아 그것이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되고 그 뿌리 속에 묻어 둔 불씨가 되는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파아란 보랏빛 얼굴로 웃고

4월歌, 봄봄봄/유안진

4월歌, 봄봄봄 유안진 붉은 꽃을 바라보며 오도카니 앉아 턱 괴고 앉아 묻는다 아직도 사랑하느냐고 초록 잎새 만져 보다가 눈을 감고 가슴에 손 얹고 묻는다 아직도 미워하느냐고 심장이 죽음을 보아야 뜨거워질까 심장아 네게로 열리는 마음 확인하고 거듭 확인하는 눈물 눈물의 봄비 속에 뻑, 뻐꾹 쇠망치 소리 마음 대문짝에 못질하는 망치 소리 이성의 꾸짖음

4월 / 정영애

4월 정영애 사랑을 한 적 있었네 수세기 전에 일어났던 연애가 부활되었네 꽃이 지듯 나를 버릴 겸심을 그때 했네 모자란 나이를 이어가며 서둘러 늙고 싶었네 사랑은 황폐했지만 죄 짓는 스무 살은 아름다웠네 자주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곤 했었네 활활 불 지르고 싶었네 나를 엎지르고 싶었네 불쏘시개로 희박해져가는 이름 일으켜 세우고 싶었네 그을린 머리채로 맹세하고 싶었네 나이를 먹지 않는 그리움이 지루한 생에 그림을 그리네 기억은 핏줄처럼 돌아 길 밖에 있는 스무 살, 아직 풋풋하네 길어진 나이를 끊어내며 청년처럼 걸어가면 다시 필사적인 사랑이 시작될까 두근거리네 습지 속 억새처럼 우리 끝내 늙지 못하네

4월 /위선환

4월 위선환 햇빛 내리는 소리가 자욱하네요 수풀 밑에까지 빛살이 내려와서 푸르고 밝아요 가지 마디마다 망울을 부풀리고 터트리는 어린 싹들, 눈꺼풀에 쏟아지는 햇살이 부시어 고갯짓도 하네요 갓 핀 싹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속잎을 비벼대는지, 숨어 있는 작은 손들이 얼마나 많은 잎새를 피우는지요 내 내부의 마디마디에서 불꽃이 일어요 몸 안에 닿은 빛이 일순에 발광했어요 환하고 물밑이듯 조용하네요 내가 들어있던 어머니 몸 안이 이랬지요 눈도 귀도 잠겨 있었지만 물이 빠지는 소리 어머니 몸 열리는 소리가 다 들렸어요 내 생명으로 들어오는 빛살이 보였어요 그래요. 빛살 푸른 거기쯤이면 어머님이 계실 듯 싶네요 갓 낳은 누이를 묻고 나서 바람소리만 듣던 어머니 작은 씨앗이거나 흰 풀꽃이거나 내 어릴 적 주린 허리를 ..

4월 /오세영

4월 오세영 언제 우리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가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비찬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지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