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710

4월은 갈아엎는 달 /신동엽

4월은 갈아엎는 달 신동엽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넣고 있을 아, 죄없이 눈만 큰 어린 것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4월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조국에도 어느 머언 심저心底,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 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한강船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4월의 꽃 / 신달자

4월의 꽃 신달자 홀로 피는 꽃은 그저 꽃이지만 와르르 몰려 숨 넘어가듯 엉겨 피어 쌓는 저 사건 뭉치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벚꽃 철쭉들 저 집합의 무리는 그저 꽃이 아니다 우루루 몰려 몰려 뜻 맞추어 무슨 결의라도 하듯이 그래 좋다 한마음으로 왁자히 필 때까지 피어보는 서럽고 억울한 4월의 혼령들 잠시 이승에 불러 모아 한번은 화끈하게 환생의 잔치를 베풀게 하는 신이 벌이는 4월의 이벤트

4월의 풀 /천양희

4월의 풀 천양희 빈 들판 위를 찌르는 바람같이 우리도 한동안 그렇게 떠돌았다 불의의 연기 한가닥 피워 올리며 완강하게 문닫는 세상의 어느 곳인가 안과밖의 고리는 끊어지고 저 얼었다 녹는 강물 바다에 몸 섞어 떠밀릴 때마다 낮은 언덕 굽은 등성이에 한줄 마른 뼈로 엎드려 구름 낀 세상 낭패하며 바라본다 오늘도 허기진 하루 4월의 모랫바람 사정없이 불어와 취객의 퇴근길 앞은 잘 보이지 않고 밟혀도 밟혀도 되살아 나는 키 작은 풀이 되어 뿌어연 가로등 밑을 묵묵히 걸어간다

4월 엽서 /정일근

4월 엽서 정일근 막차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는 하마 분분한 낙화 끝나고 지는 꽃잎 꿏잎 사이 착하고 어린 새 잎들 눈뜨고 있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교정 4월 나무에 기대어 낮은 휘파람 불며 그리움이 시편들을 날려보내던 추억의 그림자가 그곳에 남아 있습니까 작은 바람 한 줌에도 온 몸으로 대답하던 새 잎들처럼 나는 참으로 푸르게 시의 길을 걸어 그대 마을로 가고 싶었습니다 날이 저물면 바다로 향해 난 길 걸어 돌아가던 옛집 진해에는 따뜻한 저녁 불빛 돋아나고 옛 친구들은 잘 익은 술내음으로 남아 있겠지요 4월입니다 막차가 끝나기 전에 길이 끝나기 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4월과 5월 /박정만

4월과 5월 박정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봄꽃보다 찬란하게 사라져간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너는 나를 그리며 더 큰 웃음을 웃고 있지만 네가 던진 함성도 돌멩이도 꿈 밖에 지고 모호한 안개, 모호한 슬픔 속으로 저 첫새벽의 단꿈도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사라진다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세월의 앙금처럼 가라앉아 그것이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되고 그 뿌리 속에 묻어 둔 불씨가 되는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파아란 보랏빛 얼굴로 웃고

4월歌, 봄봄봄/유안진

4월歌, 봄봄봄 유안진 붉은 꽃을 바라보며 오도카니 앉아 턱 괴고 앉아 묻는다 아직도 사랑하느냐고 초록 잎새 만져 보다가 눈을 감고 가슴에 손 얹고 묻는다 아직도 미워하느냐고 심장이 죽음을 보아야 뜨거워질까 심장아 네게로 열리는 마음 확인하고 거듭 확인하는 눈물 눈물의 봄비 속에 뻑, 뻐꾹 쇠망치 소리 마음 대문짝에 못질하는 망치 소리 이성의 꾸짖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