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92

6월에 쓰는 편지/허후남

6월에 쓰는 편지 허후남 내 아이의 손바닥만큼 자란 6월의 진초록 감나무 잎사귀에 잎맥처럼 세세한 사연들 낱낱이 적어 그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지독하고도 쓸쓸한 이 그리움은 일찍이 저녁 무렵이면 어김없이 잘도 피어나던 분꽃 그 까만 씨앗처럼 박힌 그대의 주소 때문입니다 짧은 여름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초저녁별의 이야기와 갈참나무 숲에서 떠도는 바람의 잔기침과 지루한 한낮의 들꽃 이야기들일랑 부디 새벽의 이슬처럼 읽어 주십시오 절반의 계절을 담아 밑도 끝도 없는 사연 보내느니 아직도 그대 변함없이 그곳에 계시는지요

나의 6월은 /김재진

나의 6월은 김재진 산다고 살아지고 죽는다고 죽어지나 괜한 성질머리 하구는 억울해서 어찌 사는가 느긋하게 살고 지면 더없이 좋으려나 기운마저 바닥이라 초저녁달도 조는가 어진 벗들도 하나들 가버리고 점잖게 남짓이 좋겠냐마는 유유자적은 고사하고 술병만 쌓여가 급한 마음에 허우적거려봐야 소용돌이만 심해지는가 나비처럼 사뿐사뿐 날아서 더디 가면 좋으리라.

유월 / 조연호

유월 / 조연호 계집애들이 쪼그려 앉아 맑고 투명한 땀을 쥐며 공기놀이에 열중한다. 얼굴 을 만져주던 면사(綿絲)같은 잠이었다. 덥고 더럽고 지켜야 할 것 많은 유월, 물웅덩이가 바람개비처럼 어린 모기들을 훅훅 창가로 날려보낸다. 타인절대 금지, 라고 써넣은 팻말을 화장실 문에 못질하던 노인의 손이 오늘은 붉은 애 호박에게 끈을 달아준다. 많은 자식들에게 그는 그렇게 못질을 하고 끈을 고쳐 매 주었을 것이다. 애정없이, 허기진 기억이 내 안에 들어온다. 어리고 어질고 어지럽혀진 유월, 문밖을 나서면 어미새처럼 둥지 주위를 맴돌다 푸드득 날아 가는 골목길이 자기 울음보다 더 밝아지곤 했다.

텃밭의 유월 /이원문

텃밭의 유월 이원문 봄이라 하던 때가 엊그제였었는데 그 봄이 언제 어디로 갔나 샛대문 밖 텃밭 그늘 아침 나절 비켜 서고 이것 저것 심은 채소 잘도 자라는구나 상추에 쑥갓 시금치 부추 고추 포기 밑 씨 뿌린 열무 엷드란히 하루가 다르고 옥수수에 참외 수박 심은 감자 켔으니 마늘은 안 뽑을까 자라는 오이 손마디에 뿌린 팝씨 실파 되니 이 손으로 모종 해야 되겠지 많지는 않아도 모종에 뿌린 씨앗들이니 누구 거둬 먹이려 이 부지런을 떨었나 없는 살림 그 살림에 그렇게 기른 아이들 덥다 하는 그 초 중복 날 이 에미 보러 오려나 할미 찾을 손주 놈들 보고 싶구나

푸른 유월 /목필균

푸른 유월 목필균 내게도 저런 시퍼런 젊음이 있었던가 풀빛에 물든 세상 떠들썩한 세상이 온통 초록빛이다 흥건하게 번져오는 녹음이 산을 넘다가 풍덩 강에 빠진다 푸르게 물든 강물 푸르게 물든 강물이 또르르 아카시아 향기 말아쥐고 끝없이 길을 연다 눈으로 코끝으로 혀끝으로푸른 혈맥이 뛰며 펄펄 살아 숨쉬는 6월 속으로 나도 따라 흐른다

유월 기집애 /나태주

유월 기집애 나태주 너는 지금쯤 어느 골목 어느 낯선 지붕 밑에 서서 울고 있느냐 세상은 또다시 유월이 와서 감꽃이 피고 쥐똥나무 흰꽃이 일어 벌을 꼬이는데 감나무 새 잎새에 유월 비단햇빛이 흐르고 길섶의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은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나는데 너는 지금쯤 어느 하늘 어느 강물을 혼자 건너가며 울고 있느냐 내가 조금만 더 잘해주었던들 너는 그리 쉬이 내곁을 떠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가진 것을 조금만 더 나누어주었던들 너는 내 곁에서 더 오래 숨쉬고 있었을 텐데 온다간다 말도 없이 떠나간 아이야 울면서 울면서 쑥굴헝의 고개 고개를 넘어만 가고 있는 쪼꼬만 이 유월 기집애야 돌아오려무나 돌아오려무나 감꽃이 다 떨어지기 전에 쥐똥나무 흰꽃이 다 지기 전에 돌아오려무나 돌아와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 옆..

6월에는 스스로 잊도록 하자/안톤 슈나크

6월에는 스스로 잊도록 하자 안톤 슈나크 시냇가에 앉아보자 될 수 있으면 너도밤나무 숲 가까이 앉아 보도록 하자 한 쪽 귀로는 여행길 떠나는 시냇물 소리에 귀기울이고 다른 쪽 귀로는 나무 우듬지의 잎사귀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는 모든 걸 잊도록 해보자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 질투 탐욕 자만심 결국에는 우리 자신마저도 사랑과 죽음조차도 포도주의 첫 한 모금을 마시기 전에 사랑스런 여름 구름 시냇물 숲과 언덕을 돌아보며 우리들의 건강을 축복하며 건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