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석탄 박물관에서

종이연 2007. 7. 15. 17:51
석탄 박물관에서 / 이기애



한 남자를 만났네

흑 먼지 자욱한 갱도, 전설의 유품과 함께
박제되어 있었네

그도 빛나는 청춘의 한 때가 있었으리


누군가의 애인이었을, 남편이었을, 아버지였을 모습
항거의 벽을 향해 온통 들려 있었네

저 필생의 뚝심 하나로
캄캄하게 쳐들어오는 침묵 뚫어내며
더 이상 막장은 없다, 없다 그렇게 자세를 굳혔으리라
피로가 딱정이처럼 달라붙은
머리카락 몇 개
흩어질 듯 내려온 파리한 이마 꿈틀꿈틀
돋아나는 붉은 정맥
마지막 순간 그는 뜨겁게 품어주어야 할
젊은 아내를 생각했을까
아직 타고 있는 분노의 불길 한 가닥 내게 옮겨 붙어
돌아오는 길 내내 이글거리는 나를
배웅이라도 하듯
싸늘하게 식은 석탄더미, 검은 폐허의 시간을
불쑥 내어 미는

한 남자를 만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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