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흔 적 (痕跡)

종이연 2007. 10. 16. 22:27
흔 적 (痕跡)



시인 / 이 용 대



이삿짐을 드러낸 텅ㅡ빈 방마다

살아온 그림자 줍고 쓸다가

삶 먼지 뽀얀 화장대 밑에

흘러간 세월 조각

달력 한 장을 줍는다.



빨간 동그라미는

무슨 날이었을까

적어 놓은 글씨는 희미해졌다.



눈감고도 손에 익은 문고리마다

어제부터 낯설어 헛 짚어 지고

부엌벽에 붙어 있는 남은 정마저

챙겨 놓은 열쇠와 함께

두고 가야 한다.



마지막 나서는 문지방 틈에

못다픈 꿈같은

때묻은 동전 한 닢



가만히 주워든 손바닥 위로

속 서러움에 떨어지는

눈물에 젖고



어깨로 쌓여온

고단했던 흔적(痕跡)들을

그래도 나의 것이라 두고 갈 수 없어

야윈 등에 고이 지고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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