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종이배 사랑

종이연 2007. 10. 16. 22:26
종이배 사랑



- 도종환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 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 더 건너야 하는 나이여서
지금 어깨를 마주 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햇볕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써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하던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내가 쓴 그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 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낯선 섬의
감탕밭에 묶여 있는 시간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 한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내 마음의 전부였음을


바람결에 종이배에 실려 보냈다 되돌아오기를 수십번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이 한마디 네 몸 깊은 곳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좋은 시 느낌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흔 적 (痕跡)  (0) 2007.10.16
가을  (0) 2007.10.16
가을에 읽는 시 / 김용택  (0) 2007.10.14
아름다운 땀 냄새 / 김영재  (0) 2007.10.14
가을의 속도 / 최하림  (0) 2007.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