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낙조
송수권
왜 채석 강변에 사는지 묻지 말아라.
나는 지금 만 권의 책을 쌓아 놓고 글을 읽는다.
만 권의 책, 파도가 와서 핥고 핥는 절벽의 단애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나의 전 재산을 다 털어도 사지 못할 만 권의 책
오늘은 내가 쓴 초라한 저서 몇 권을 불지르고
이 한바다에 재를 날린다.
켜켜이 쌓은 책 속에 무일푼 좀처럼
세 들어 산다
왜 채석 강변에 사느냐 묻지 말아라.
고통에 찬 나의 신음 하늘에 닿았다 한들
끼룩끼룩 울며 서해를 나는
저 변산 갈매기 만 큼이야 하겠느냐
물 썬 다음 저 뻘밭에 피는 물 잎새들 만 큼이야
자욱하겠느냐
그대여, 서해에 와서 지는 낙조를 보고
울기 전에
왜 나 채석 강변에 사는지 묻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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