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부산 중앙동 거리
김상미
11월의 부산 중앙동 거리
나는 언제나 그 거리를 좋아했다
그곳에서 마시던 커피, 쓰디쓴 소주, 꼬들꼬들했던 갈매기살, 바벨탑처럼 높이 솟아 있던 부
산타워……
때로는 너무 강렬해서 고개를 돌려야 했던
그 거리를 함께 걸었던 희망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꽃다발들은 이미 시들고
11월의 찬바람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그 시든 꽃다발들을
꽃다발들의 파편까지도 모두 휩쓸어가 버렸지만
용두산 40계단을 오르며 보았던
어디로 가는지 모를 비행기 한 대
내가 상상한 꿈의 모습으로 높이 날아오르던 비행기 한 대
그 생생한 질주 아래 보름달처럼 꽉 차 있던 내 시선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부산우체국 전화 부스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던
누군가의 우애와 경쾌한 중앙성당의 아침 종소리
더 멀리 보이는 부둣가, 이제 막 먼 길 떠나는 젊은 근육들의 뱃고동소리
그때의 나는 에피쿠로스가 말한 그 미치광이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너무나 다급하고 절박했던 희망만은 잃지 않으려
날마다 웃으며 매일같이 인생을 새로 시작해야 했던 미치광이
밥은 먹지 않아도 무수한 단어들로 꽉꽉 채워진 메모지만으로도 행복했던
11월의 부산 중앙동 거리
내 젊은 날의 놀이터
언제나 내 나이 속에서만 존재하고
언제나 내 나이만큼만 변해가는
11월의 부산 중앙동 거리를 다시 걸으며
나는 내 안에서 꿈틀대며 바스락거리는 그 추억의 트렁크를 열어젖히고
그 옛날처럼 가장 가까운 선술집으로 뛰어 들어가
언제나 그랬듯이 혼자서 혼자를 향해 건배!를 외친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고
나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이 거리에 다 쏟아내어도
여전히 남아 있는 내 생에 깜짝 놀란 듯 다시 환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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