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구월이 와도 /이재무

종이연 2024. 9. 13. 22:50

구월이 와도     

 

이재무

 

구월이 와도 멀어진 사람 더욱 멀어져 아득하고

가까운 사람의 눈길조차 낯설어가고

구월이 와도 하늘은 딱딱한 송판 같고

꽃들은 피면서 지기 시작하고

마음의 더위 상한 몸 더욱 지치게 하네

구월이 와도 새들의 날개는 무겁고

별들은 이끼 낀 돌처럼 회색의 도화지에 박혀

빛나지 않고 백지 앞에서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이제는 먼 곳의 고향조차 그립지 않네

구월이 와도 나 예전처럼 설레지 않고

가는 세월의 앞치마에 때만 묻히니

나를 울고간 사랑아. 나를 살다간 나무야

꽃아 강물아 달아 하늘아

이대로 죽어도 좋으련, 좋으련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