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와도
이재무
구월이 와도 멀어진 사람 더욱 멀어져 아득하고
가까운 사람의 눈길조차 낯설어가고
구월이 와도 하늘은 딱딱한 송판 같고
꽃들은 피면서 지기 시작하고
마음의 더위 상한 몸 더욱 지치게 하네
구월이 와도 새들의 날개는 무겁고
별들은 이끼 낀 돌처럼 회색의 도화지에 박혀
빛나지 않고 백지 앞에서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이제는 먼 곳의 고향조차 그립지 않네
구월이 와도 나 예전처럼 설레지 않고
가는 세월의 앞치마에 때만 묻히니
나를 울고간 사랑아. 나를 살다간 나무야
꽃아 강물아 달아 하늘아
이대로 죽어도 좋으련, 좋으련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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