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99

4월 /정영애

4월 정영애 사랑을 한 적 있었네 수세기 전에 일어났던 연애가 부활되었네 꽃이 지듯 나를 버릴 겸심을 그때 했네 모자란 나이를 이어가며 서둘러 늙고 싶었네 사랑은 황폐했지만 죄 짓는 스무 살은 아름다웠네 자주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곤 했었네 활활 불 지르고 싶었네 나를 엎지르고 싶었네 불쏘시개로 희박해져가는 이름 일으켜 세우고 싶었네 그을린 머리채로 맹세하고 싶었네 나이를 먹지 않는 그리움이 지루한 생에 그림을 그리네 기억은 핏줄처럼 돌아 길 밖에 있는 스무 살, 아직 풋풋하네 길어진 나이를 끊어내며 청년처럼 걸어가면 다시 필사적인 사랑이 시작될까 두근거리네 습지 속 억새처럼 우리 끝내 늙지 못하네

4월 /오세영

4월 오세영 언제 우리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가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비찬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지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4월 /변영숙

4월 변영숙 톡톡 버들강아지 눈튼다 홍매화...가지마다 홍등달고 앞산 진달래도 갸여히 가슴에 불당겼디 몽실 부푼 백목련 젖가슴에 배시시 곁눈질로 웃던 벚꽃도 그만 꽃눈 펑펑 난리가 났다 난데없이 덥친 비바람에 심통에 훌훌 땅바닥에 질펀한 저 아픈 사람들 오늘밤 남은 저 꽃들 또 다시 왕창 무너진다면...어쩌나 숨이 차 오른다 숨이 막 멎을 것 같다

부활송 /구상

부활송 구상 죽어 썩은 것 같던 매화의 옛등걸에 승이릐 화관인 듯 꽃이 눈부시다 당신 안에 생명을 둔 만물이 저렇듯 죽어도 죽지 않고 또다시 소생하고 변신함을 보느니 당신이 몸소 부활로 증거한 우리의 부활이야 의심할 바 있으랴!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진리는 있는 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달게 받는 고통은 값진 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우리의 믿음과 바람과 사랑은 헛되지 않으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우리의 삶은 허무의 수렁이 아니다 봄의 행진이 아롱진 지구의 어느 변두리에서 나는 우리의 부활로써 성취될 그날의 우리를 그리며 황홀에 취해 있다

부활 /김용택

부활 김용택 ㅡ 4월에 피 묻어 선연한 새벽 낯빛들 찢긴 가슴 펄럭여 그리운 그 얼굴들 그리워 밤이면 밤마다 잠 못 이루고 날이면 날마다 걷던 걸음 우뚝우뚝 멈춰서는 소쩍새 길길이 울어 넘는 삼사오월 거 고갯길 펄펄 죽은 몸 펄펄 살아 잡는 손 풀뿌리 뿌리치며 한 많은 고개 산, 산 넘고 물, 물건너 훌훌 단숨에 타는 가슴 불길로 오라 못견디게 그리운 새벽 낯빛 그 고운 얼굴들

봄이여, 사월이여 /조병화

봄이여, 사월이여 /조병화 하늘로 하늘로 당겨오르는 가슴 이걸 생명이라고 할까 자유라고 할까 해방이라고 할까 4월은 이러한 힘으로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을 밖으로, 밖으로, 인생 밖으로 한없이, 한없이 끌어내며 하늘에 가득히 풀어놓는다 멀리 가물거리는 유혹인가 그리움인가 사랑이라는 아지랑인가 잊었던 꿈이 다시 살아난다 오, 봄이여, 4월이여 이 어지러움을 어찌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