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86

5월의 시/이해인

5월의 시 이해인  풀잎은 풀잎대로바람은 바람대로축복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하늘이 잘보이는 숲으로 가서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우리의 가슴속에 퍼올리게 하십시오말을 아낀 기도속에 접어둔 기도가한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오월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이 앉아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은총을 향해 깨어있는 지고한 믿음과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우리네 가슴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구김살 없는 햇빛이아낌없이 축복을 쏟아내는 오월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십시오

5월의 사랑/ 송수권

5월의 사랑 송수권 누이야 너는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가오월의 저 밝은 산색이 청자를 만들고 백자를 만들고저 나직한 능선들이 그 항아리의 부드러운 선들을 만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가그렇다면 누이야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네 사는 마을 저 떠도는 흰구름들과 앞산을 깨우는신록들의 연한 빛과 밝은 빛 하나로 넘쳐흐르는 강물을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푸른 새매 한 마리가 하늘 속을 곤두박질하며 지우는이 소리 없는 선들을, 환한 대낮의 정적 속에물밀듯 터져오는 이 화녕끼 같은 사랑을그러한 날 누이야, 수틀 속에 헛발을 딛어치맛말을 풀어 흘린 춘향이의 열두 시름 간장이우리네 산에 들에 언덕에 있음직한 그 풀꽃 같은 사랑이야기가 절로는 신들린 가락으로 넘쳐흐르지 않겠는가저 월매의 기와집 네 추녀끝이 허공에나..

논물 드는 5월에/ 안도현

논물 드는 5월에  안도현 그 어디서 얼마만큼 참았다가 이제서야 저리 콸콸 오는가마른 목에 칠성사이다 붓듯 오는가저기 물길 좀 봐라논으로 물이 들어가네물의 새끼, 물의 손자들을 올망졸망 거느리고해방군같이 거침없이총칼도 깃발도 없이 저 논을 다 점령하네논은 엎드려 물을 받네물을 받는, 저 논의 기쁨은 애써 영광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출렁이며 까불지 않는 것태연히 엎드려 제 등허리를 쓰다듬어주는 물의 손길을 서늘히 느끼는 것부안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나도 좋아라金萬傾 너른 들에 물이 든다고누구한테 말해주어야 하나, 논이 물을 먹었다고논물은 하늘한테도 구름한테도 물을 먹여주네논둑한테도 경운기한테도 물을 먹여주네방금 경운기 시동을 끄고 내린 그림자한테도,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저것 ..

5월 편지/ 도종환

5월 편지  도종환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처럼 긴데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깊은 침묵이 앉습니다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이 핍니까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

5월/ 조병화

5월  조병화 스물을 갓 넘은 여인의 냄새를온몸에 풍기며온갖 꽃송이들이 물 돋은 대지에나무 가지 가지에 피어난다.흰구름은 뭉게뭉게 라일락의숫푸른 향기를 타고가도가도 고개가 보이지 않는푸른 먼 하늘을 길게 넘어간다.아, 오월은 여권도 없이 그저어머님의 어두운 바다를 건너뭣도 모르고내가 이 이승으로 상륙을 한 달해마다 대지는 꽃들로 진창이지만까닭 모르는 이 허전함나는 그 나른한 그리움에 취한다.오, 오월이여

4월의 풀 /천양희

4월의 풀  천양희 빈 들판 위를 찌르는 바람같이우리도 한동안 그렇게 떠돌았다불의의 연기 한가닥 피워 올리며완강하게 문닫는세상의 어느 곳인가안과밖의 고리는 끊어지고저 얼었다 녹는 강물바다에 몸 섞어 떠밀릴 때마다낮은 언덕 굽은 등성이에한줄 마른 뼈로 엎드려구름 낀 세상 낭패하며 바라본다오늘도 허기진 하루4월의 모랫바람 사정없이 불어와취객의 퇴근길앞은 잘 보이지 않고밟혀도 밟혀도 되살아 나는키 작은 풀이 되어뿌어연 가로등 밑을 묵묵히 걸어간다

4월의 일기 /나호열

4월의 일기  나호열 말문을 그만 닫으라고하느님께서 병을 주셨다 몇차례 황사가 지나가고꽃들은 다투어 피었다 졌다며칠을 눈으로 듣고귀로 말하는 동안나무 속에도 한 영혼이 살고 있음을어렴풋이 알게 되었다허공에 가지를 뻗고파란 잎을 내미는 일꽃을 피우고심지어 제 머리 위에 둥지 하나새로 허락하는 일까지혼자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파란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주먹만큼 빛나는 새 한 마리가잠시 머물고 간 뒤4월의 나무들은 일제히 강물 흘러가는소리를 뿜어내고 있다 말문을 닫으라고하느님이 내린 병을 앓고 있는 동안

4월의 꽃 /신달자

4월의 꽃  신달자 홀로 피는 꽃은 그저 꽃이지만와르르 몰려숨 넘어가듯엉겨 피어 쌓는 저 사건 뭉치들개나리 진달래 산수유벚꽃 철쭉들저 집합의 무리는그저 꽃이 아니다우루루 몰려 몰려뜻 맞추어 무슨 결의라도 하듯이그래 좋다 한마음으로 왁자히필 때까지 피어보는서럽고 억울한 4월의 혼령들잠시 이승에 불러 모아한번은 화끈하게환생의 잔치를 베풀게 하는신이 벌이는 4월의 이벤트

4월에서 5월로 / 하종오

4월에서 5월로   하종오  봄의 번성을 위해 싹틔운 너는나에게 개화하는 일을 물려주었다아는 사람은 안다이 세상 떠도는 마음들이한마리 나비되어 앉을 곳 찾는데인적만 남은 텅빈 한길에서 내가왜 부르르 부르르 낙화하여 몸떨었는가남도에서 꽃샘바람에 흔들리던 잎새에보이지 않는 신음소리가 날 때마다피같이 새붉은 꽃송이가 벙글어우리는 인간의 크고 곧은 목소리를 들었다갖가지 꽃들 함께 꽃가루 나눠 살려고향기 내어 나비떼 부르기도 했지만너와 나는 씨앗을 맺지 못했다이 봄을 아는 사람은 이 암유도 안다여름의 눈부신 녹음을 위해우리는 못다 핀 꽃술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