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88

삼월의 바람 속에/이해인

삼월의 바람 속에 이해인 어디선지 몰래 숨어들어 온 근심, 걱정 때문에 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 흰 눈이 채 녹지 않은 내 마음의 산기슭에도 꽃 한 송이 피워 내려고 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 삼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빛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 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데서도 잠들 수 없는 삼월의 바람 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로 일어서는 삼월의 바람입니다

고두미 마을에서/도종환

고두미 마을에서 도종환 부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 사당을 다녀오며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이 내린다. 오동나무함에 들려 국경선을 넘어 오던 한줌의 유골 같은 푸스스한 눈발이 동력골을 넘어 이곳에 내려온다. 꽃뫼 마을 고령 신씨도 이제는 아니 오고 금초하던 사당지기 귀래리 나무꾼 고무신 자국 한 줄 눈발에 지워진다. 복숭나무 가지 끝 봄물에 탄다는 삼월이라 초하루 이 땅에 돌아와도 영당각 문풍질 찢고 드는 바람소리 발 굵은 돗자리 위를 서성이다 돌아가고 욱리하 냇가에 봄이 오면 꽃 피어 비바람 불면 상에 누워 옛이야기 같이 하고 서가에는 책이 쌓여 가난 걱정 없었는데* 뉘 알았으랴 쪽발이 발에 채이기 싫어 내 자란 집 구들장 밑 오그려 누워 지냈더니 오십 년 지난 물소리 비켜 돌아갈 ..

새해의 기도 / 이해인

새해의 기도 이해인 1월에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그동안 쌓인 추한 마음 모두 덮어 버리고 이제는 하얀 눈처럼 깨끗하게 하소서. 2월에는 내 마음에 꿈이 싹트게 하소서 하얀 백지에 내 아름다운 꿈이 또렷이 그려지게 하소서. 3월에는 내 마음에 믿음이 찾아오게 하소서. 의심을 버리고 믿음을 가짐으로 삶에 대한 기쁨과 확신이 있게 하소서. 4월에는 내 마음이 성실의 의미를 알게 하소서. 작은 일 작은 한 시간이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기회임을 알게 하소서. 5월에는 내 마음이 사랑으로 설레게 하소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은 사랑 안에 있음을 알고 사랑으로 가슴이 물들게 하소서. 6월에는 내 마음이 겸손하게 하소서 남을 귀히 여기고 자랑과 교만에서 내 마음이 멀어지게 하소서. 7월에는 내 마음이 인내의 가치..

2월은 계절의 징검다리 /최원종

2월은 계절의 징검다리 최원종 계절의 징검다리 겨울의 찬바람 속 봄의 향기를 잉태하고 하나씩 뽑아 올리는 고로쇠 수액은 봄을 알리는 시작이다 아직 차가운 한기가 발버둥 치고 있지만 차가운 겨울의 이빨 속에서 봄의 향기 버들강아지 털갈이를 시작을 하며 돌 틈 아래 모여 있는 가을 낙엽 밑에는 봄을 알리는 파란 새싹이 날갯짓 하며 솟아날 준비에 짧은 겨울 햇살은 야속하기만 하네 계절의 징검다리 2월 봄을 알리는 입춘이 2월의 가슴 속에서 숨을 쉬고 있지만 추운 바람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2월의 뱃속에서 봄의 꽃씨를 뿌려가며 찬바람 물러나길 눈치만 보고 있다

해와 달 詩經

해와 달 詩經 ㅡ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여자의 심정을 읊은 노래 해와 달은 변함없이 온누리를 비추고 있는데 내 임은 이 몸을 옛날처럼 사랑해 주지 않네요 임의 마음 딴 데 있다지만 어찌해 날 안 돌보실까 해와 달은 변함없이 온누리를 덮어주고 있는데 내 임은 이 몸을 옛날처럼 좋아하지 않네요 임의 마음 딴 데 있다지만 어찌해 이 정성 안 받으실까 해와 달은 변함없이 동산에서 떠오르고 있는데 내 임은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 주지 않네요 임의 마음 딴 데 있다지만 날 잊지는 못하실 것을 해와 달은 변함없이 동산에서 떠오르고 있는데 부모님이여 날 기르실 적 이런 근심 없게 못했나요 임의 마음 딴 데 있다지만 내게 의리조차 없이 하네

달이 떴네 時經

달이 떴네 時經 ㅡ 달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노래 달이 떠 환하게 비치니 고운 임의 모습 떠오르네 아리따운 그 모습이여, 마음이 시름으로 아프네 달이 떠 희게 비치니 아름다운 임의 얼굴 떠오르네 얌전한 그 얼굴이여, 마음이 시름으로 아프네 달이 떠 환하게 비치니 어여쁜 임의 몸매 떠오르네 맵시 고운 그 몸매여, 마음이 시름으로 달아오르네

달밤 / 이호우

달밤 이호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사순절 기도시/ 이해인

사순절 기도시 이해인 해마다 이맘 때쯤 당신께 바치는 나의 기도가 그리 놀랍고 새로운 것이 아님을 슬퍼하지 않게 하소서, 마음의 얼음도 풀리는 봄의 강변에서 당신께 드리는 나의 편지가 또 다시 부끄러운 죄의 고백서임을 슬퍼하지 않게 하소서, 살아 있는 거울 앞에 서듯 당신 앞에서먼 얼룩진 얼굴의 내가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나의 말도 어느새 낡은 구두 뒤축처럼 닳고 닳아 자꾸 죄풀이할 염치도 없지만 아직도 이말 없이는 당신께 나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소서 주님! 여전히 믿음이 부족했고 다급할때만 당신을 불렀음을 여전히 게으르고 냉담 했고 기분에 따라 행동했음을 여전히 나에게 관대했고 이웃에겐 인색 했음을 여전히 불평과 편견이 심했고 쉽게 남을 판단하고 미워했음을 여전히 참을성 없이 행동했고..

나흘 폭설 /박성우

나흘 폭설 박성우 폭설이다 버스는 나흘 째 오지 않고 자두나무정류자엥 나온 이는 자두나무뿐이다 산마을은 발 동동거릴 일없이 느긋하다 간혹 빈 비닐하우스를 들여다보는 발길도 점방에 담배 사러 나가던 발길도 이장선거 끝난 마을회관에 신발 한 켤레씩을 보탠다 무를 쳐 넣고 끓이는 닭국 냄새 가득한 방에는 벌써 윷판이 벌어졌고 이른 낮술도 한자리 차고 앉았다 허나 절절 끓는 마을회관방엔 먼 또래도 없어 잠깐 끼어보는 것조차 머쓱하고 어렵다 나는 젖은 털신을 탈탈 털어 신고 다시 빈집에 든다 아까 낸 눈길조차 금시 지워지는 마당 동치미국물을 마시다 쓸고 치직거리는 라디오를 물리게 듣다가 쓴다 이따금 눈보라도 몰려와 한바탕씩 거들고 간다 한시도 쉬지않고 눈을 쓸어대던 싸리나무와 조릿대와 조무래기 뽕나무는 되레 눈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