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도종환 입춘이 지나갔다는 걸 나무들은 몸으로 안다 한문을 배웠을 리 없는 산수유나무 어린 것들이 솟을대문 옆에서 입춘을 읽는다 이월이 좋은 것은 기다림이 나뭇가지를 출렁이게 하기 때문이다 태백산맥 동쪽에는 허벅지까지 습설(濕雪)이 내려 쌓여 오르고 내리는 길 모두가 막혔다는데 길가의 나무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삼월도 안심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월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 무엇이 있다 녹았던 물을 다시 살얼음으로 바꾸는 밤바람이 위세를 부리며 몰려다니지만 이월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지나온 내 생애도 찬바람 몰아치는 날 많았는데 그때마다 볼이 빨갛게 언 나를 나는 순간순간 이월로 옮겨다 놓곤 했다 이월이 나를 제 옆에 있게 해주면 위안이 되었다 오늘 하침에도 이월이 슬그머니 옆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