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88

이월 /도종환

이월 도종환 입춘이 지나갔다는 걸 나무들은 몸으로 안다 한문을 배웠을 리 없는 산수유나무 어린 것들이 솟을대문 옆에서 입춘을 읽는다 이월이 좋은 것은 기다림이 나뭇가지를 출렁이게 하기 때문이다 태백산맥 동쪽에는 허벅지까지 습설(濕雪)이 내려 쌓여 오르고 내리는 길 모두가 막혔다는데 길가의 나무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삼월도 안심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월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 무엇이 있다 녹았던 물을 다시 살얼음으로 바꾸는 밤바람이 위세를 부리며 몰려다니지만 이월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지나온 내 생애도 찬바람 몰아치는 날 많았는데 그때마다 볼이 빨갛게 언 나를 나는 순간순간 이월로 옮겨다 놓곤 했다 이월이 나를 제 옆에 있게 해주면 위안이 되었다 오늘 하침에도 이월이 슬그머니 옆에..

설날 가는 고향길/오광수

설날 가는 고향길 오광수 내 어머니의 체온이 동구밖까지 손짓이 되고 내 아버지의 소망이 먼길까지 마중을 나오는 곳 마당 가운데 수 없이 찍혀있을 종종 걸음들은 먹음직하거나 보암직만해도 목에 걸리셨을 어머니의 흔적 온 세상이 모두 하얗게 되어도 쓸고 또 쓴 이 길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종일 기다렸을 아버지의 숨결 오래 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구요 자주 오도록 할께요 그냥 그냥 좋아하시던 내 부모님.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이젠 치울 이 없어 눈 쌓인 길을 보고픔에 눈물로 녹이며 갑니다

2월의 시 /함영숙

2월의 시 함영숙 겨울 껍질 벗기는 숨소리 봄 잉태 위해 2월은 몸사래 떨며 사르륵 사르륵 허물 벗는다. 자지러진 고통의 늪에서 완전한 날, 다 이겨내지 못하고 삼일 낮밤을 포기한 2월 봄 문틈으로 머리 디밀치고 꿈틀 꼼지락 거리며 빙하의 얼음 녹이는 달 노랑과 녹색의 옷 생명에게 입히려 아픔의 고통, 달 안에 숨기고 황홀한 환희의 춤 몰래추며 자기 꼬리의 날 삼일이나 우주에 던져버리고 2월은 봄 사랑 낳으려 몸사래 떤다 겨울의 끝자락이 아쉽고 초봄을 잠시 맛배기로 계절은 여름으로 곧장 달려갈게 뻔한데 그래서 아직은 겨울잠에서 서성이고 싶은데 2월의 짧다란 날짜가 미워집니다 내 삶 언저리 돌아보면 짧아서 2월이 좋았던 기억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것 같은 달 현실의 삶속에는 빠른 시간들이 미워서 짧은 2월을..

2월 /박희홍

2월 박희홍 나는 봄을 알리는 입춘을 품고 살며 훈풍을 몰고 오는데 치수가 짧다고 흉보지만 뭘 보태준 적 있나 나로 인해 행복할 진데 하루라도 빨리 꽃을 피우려 3월이 머리채 잡아당겨서 그렇다고들 입방아 찢지만 아니야, 훈풍이 몰고 오는 파란 서슬에 겨울 더러 봄 시냇물을 꾸물대지 말고 무탈하게 건너라고 제 몸 기꺼이 잘라낸 착하디 착한 징검다리

2 월 /손학수

2 월 손학수 꼬리 짤린 도마뱀 같은 2월이 봄 배달을 대충하고 얼른 떠나 갈 모양이다 버들강아지 밍크 코트는 햇살에 눈 부시고 생강꽃 노란 꽃망울은 아직 꿈길을 헤매고 있는데 양지 바른곳 냉이는 봄을 깨우려 땅 속을 깊게 들여 보네 정월의 달은 점차 배가 불러 가고 밤이 깊을수록 달빛은 더욱 밝아져 그리움에 젖은 마음을 허락도 받지 않고서 훤히 들여다 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