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700

이월의 우포늪 /박재희

이월의 우포늪 박재희 우포늪은 보이는 것만의 늪이 아니다 어둠 저 밑바닥 시간의 지층을 거슬러 내려가면 중생대 공룡의 고향이 있다 원시의 활활 타오르던 박동이 시린 발끝에 닿기까지 일억 사천 만년 무수한 공룡발자국이 쿵쿵 가슴으로 밀쳐 들어온다 억겁을 버틴 가슴 벅찬 것들 나는 어느 백악기의 밀림을 걷고 있는 것일까 화석 속에 갇혔던 공룡이 어둠의 사슬을 풀면 왕버들 숲 어디쯤 나도 먼 중생대를 꿈꾸는 한 마리 공룡일까 감았던 눈을 뜨며 한 순간 전율했던 백악기를 빠져 나오자 물 속에 녹은 풀의 뼈마디와 각시붕어의 비린 향기가 물살 간질이며 깨어나고 있었다 늪, 어딘가에 있을 세월의 우체국 그 우체국에 부칠 사연을 이월의 찬 바람이 쓰고 있는가 오랜 역사의 능선에 한점 불 밝히는 빙하기에 잠긴 공룡발자국..

2월의 칠곡 /홍문숙

2월의 칠곡 홍문숙 얼음들은 이곳으로 몰려와 평면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제 안 한켠에 겨울 철새들 몇 담아놓고서 침묵의 날들을 모아 들인다 얼지 못하는 것은 어떠한 계절도 빠질 수 없다는 각오, 봉합하지 못한 미세한 입자의 경계를 허물기라도 하듯 한낮의 태양이 기웃거리는 동안에도 빙하기의 날짜들 저수지 밖 4월의 꽃들을 줄다리기 한다 꽃들의 전쟁이 결빙과 해빙 사이 미세한 경계 속으로 몰려드는 오후2시, 2월의 저수지는 꽃내음들의 국경지대다 화석이 된 계절들의 간이역이다 낯면을 숨기며 들른 초면의 향기들이 빙하기의 유물들처럼 서로의 행방을 얼음과 물이 되어 수소문 하느라 다투거나 부동의 대립 속에서 물오리 몇 마리 받아내며 둑이 있는 저 아래서부터 새로운 계절이 유입되고 또 한켠 물들은 시간의 둑들을 겹..

이월 /도종환

이월 도종환 입춘이 지나갔다는 걸 나무들은 몸으로 안다 한문을 배웠을 리 없는 산수유나무 어린 것들이 솟을대문 옆에서 입춘을 읽는다 이월이 좋은 것은 기다림이 나뭇가지를 출렁이게 하기 때문이다 태백산맥 동쪽에는 허벅지까지 습설(濕雪)이 내려 쌓여 오르고 내리는 길 모두가 막혔다는데 길가의 나무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삼월도 안심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월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 무엇이 있다 녹았던 물을 다시 살얼음으로 바꾸는 밤바람이 위세를 부리며 몰려다니지만 이월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지나온 내 생애도 찬바람 몰아치는 날 많았는데 그때마다 볼이 빨갛게 언 나를 나는 순간순간 이월로 옮겨다 놓곤 했다 이월이 나를 제 옆에 있게 해주면 위안이 되었다 오늘 하침에도 이월이 슬그머니 옆에..

설날 가는 고향길/오광수

설날 가는 고향길 오광수 내 어머니의 체온이 동구밖까지 손짓이 되고 내 아버지의 소망이 먼길까지 마중을 나오는 곳 마당 가운데 수 없이 찍혀있을 종종 걸음들은 먹음직하거나 보암직만해도 목에 걸리셨을 어머니의 흔적 온 세상이 모두 하얗게 되어도 쓸고 또 쓴 이 길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종일 기다렸을 아버지의 숨결 오래 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구요 자주 오도록 할께요 그냥 그냥 좋아하시던 내 부모님.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이젠 치울 이 없어 눈 쌓인 길을 보고픔에 눈물로 녹이며 갑니다

2월의 시 /함영숙

2월의 시 함영숙 겨울 껍질 벗기는 숨소리 봄 잉태 위해 2월은 몸사래 떨며 사르륵 사르륵 허물 벗는다. 자지러진 고통의 늪에서 완전한 날, 다 이겨내지 못하고 삼일 낮밤을 포기한 2월 봄 문틈으로 머리 디밀치고 꿈틀 꼼지락 거리며 빙하의 얼음 녹이는 달 노랑과 녹색의 옷 생명에게 입히려 아픔의 고통, 달 안에 숨기고 황홀한 환희의 춤 몰래추며 자기 꼬리의 날 삼일이나 우주에 던져버리고 2월은 봄 사랑 낳으려 몸사래 떤다 겨울의 끝자락이 아쉽고 초봄을 잠시 맛배기로 계절은 여름으로 곧장 달려갈게 뻔한데 그래서 아직은 겨울잠에서 서성이고 싶은데 2월의 짧다란 날짜가 미워집니다 내 삶 언저리 돌아보면 짧아서 2월이 좋았던 기억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것 같은 달 현실의 삶속에는 빠른 시간들이 미워서 짧은 2월을..

2월 /박희홍

2월 박희홍 나는 봄을 알리는 입춘을 품고 살며 훈풍을 몰고 오는데 치수가 짧다고 흉보지만 뭘 보태준 적 있나 나로 인해 행복할 진데 하루라도 빨리 꽃을 피우려 3월이 머리채 잡아당겨서 그렇다고들 입방아 찢지만 아니야, 훈풍이 몰고 오는 파란 서슬에 겨울 더러 봄 시냇물을 꾸물대지 말고 무탈하게 건너라고 제 몸 기꺼이 잘라낸 착하디 착한 징검다리

2 월 /손학수

2 월 손학수 꼬리 짤린 도마뱀 같은 2월이 봄 배달을 대충하고 얼른 떠나 갈 모양이다 버들강아지 밍크 코트는 햇살에 눈 부시고 생강꽃 노란 꽃망울은 아직 꿈길을 헤매고 있는데 양지 바른곳 냉이는 봄을 깨우려 땅 속을 깊게 들여 보네 정월의 달은 점차 배가 불러 가고 밤이 깊을수록 달빛은 더욱 밝아져 그리움에 젖은 마음을 허락도 받지 않고서 훤히 들여다 보는구나